2007년 정상회담은 2000년 1차 정상회담에서 이미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그동안 북핵문제로 국제상황이 악화되었고, 이 과정에서 남북관계가 가다 서다 현상을 되풀이 하면서 성사가 어려웠다. 노무현 정부는 정상회담이 필요하면 장소가 반드시 서울이 되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입장으로 정리했고, 지속적으로 정상회담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2007년 들어 북핵문제가 풀려나가는 과정 역시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했다. 부시 대통령은 2006년 11월 하노이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체제를 인정 하겠다"고 했다. 나아가 핵을 포기하면, 노무현 대통령을 포함해서 3자가 평화협정을 맺자고 했다. 북한의 입장에서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해서는 남북 관계를 풀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은 핵문제의 진전국면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의 활성화, 서해평화협력지대, 그리고 개성공단을 비롯한 경제협력의 활성화가 핵심 합의사항이다. 남북 정상은 3자(남북한과 미국) 혹은 4자(중국 포함) 정상회담을 한반도 지역내에서 열어 한반도 종전선언한반도 종전선언1953년 7월 27일 합의한 휴전협정은 전쟁의 일시적 중단을 선언한 것이다. 따라서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 정착을 위해서는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평화협정을 합의하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군사적 신뢰구축과 남북관계가 서로 신뢰할 수 있을 만큼 발전할 필요가 있다. 종전선언은 전쟁이 끝났음을 선언하는 것이며, 한반도가 더 이상 전쟁상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부시 행정부때 미국이 종전선언의 필요성을 제기했으며, 종전선언에 어느 정도의 구체적인 조치들을 담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을 추진하기로 했다. 남북한이 평화체제 논의의 당사자임을 선언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또한 서해평화협력지대를 합의함으로써, 해상경계선이라는 민감한 문제를 건드리지 않고, 경제협력을 통해 서해에 평화를 정착시킬 것을 합의했다. 또한 개성공단의 제도적 환경개선, 경의선 철도와 개성-평양 고속도로 건설, 이를 위한 북한측 구간에 대한 현대화 사업을 합의했다. 남북철도ㆍ도로 연결 시대에서 이제는 북한을 중계거점으로 대륙경제 시대로 전환할 수 있게 되었다. 개성공단 활성화를 비롯한 경제협력의 확대, 남북 철도연결 등도 중요한 합의다.
1953년 휴전협정이 맺어질 때 해상경계선 문제를 합의하지 못했다. 북방한계선북방한계선북방한계선(Northern Limit Line, NLL)은 유엔군사령관이었던 클라크 장군(Mark W. Clark)이 1953년 8월 30일 동해 및 서해에서 우발적 무력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설정한 해상경계선이다. 1953년 7월 해상 경계선에 관한 규정을 포함하지 않은 채, 정전협정이 체결되었다. 그래서 남측은 북방한계선(NLL)을 해상경계선으로 주장했지만, 북한은 이를 인정하지 않아서 남북의 갈등이 지속되었다. 1999년 남북간의 무력충돌 사태인 연평해전이 발생하였으며, 2002년에는 서해교전이라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였다.을 둘러싼 남북 갈등이 지속되는 가운데, 1990년대 들어 개최된 남북고위급회담의 결과로 맺은 불가침부속합의서 제10조에서 "남과 북의 해상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 해상불가침 구역은 해상불가침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하여 온 구역으로 한다."라고 규정하였다.
그러나 이후 남북관계에서 불가침 부속합의서 이행이 지연되면서, 1999년 남북간의 무력충돌 사태인 연평해전이 발생하였으며, 2002년에는 서해교전이라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였다. 1999년 연평해전을 겪으면서 북한은 '조선 서해해상 군사분계선'을 선포하여 해상 군사경계수역의 범위를 제시하는 등 더욱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쟁점화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서해평화협력지대를 합의했다. 당장 해상경계선 문제를 논의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남북공동어로, 해주 경제특구, 한강하구 개발 등을 통해 경제적 호혜구조를 만들어 평화를 조성하자는 방안이다.
노무현 정부에 들어와서도 개성공단의 발전은 더디게 진행했다. 핵문제가 풀리지 않았고, 미국의 대북경제제재를 비롯한 국제환경도 개선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2004년 12월 15일, 그릇을 만드는 리빙아트가 첫 번째 공장으로 준공식을 가졌다. 그날 만들어진 '통일냄비' 1,000세트는 오후 2시 군사분계선을 통과해서 6시 서울의 롯데백화점에 도착해 일반 시민들에게 절찬리에 팔렸다.
개성공단은 수도권에서 60km이내에 위치하고 있어 지리적으로 가깝고, 임금이 매우 낮다는 점에서 경쟁력이 있다. 개성공단에 진출한 기업들은 대부분 신발, 섬유, 봉제 등 그동안 국내에서 경쟁력을 상실했던 중소기업들이며, 중국이나 베트남, 동남아시아로 해외투자를 했지만 성공하지 못한 경험을 가진 기업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개성공단의 미래는 북한핵문제와 포괄적인 남북관계 개선에 달려 있다. 안보환경이 개선되어야 기업들이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으며, 남북관계가 개선되어야 출입절차 등이 보다 편리해 질 수 있고, 국제환경이 개선되어야, 수출과 관세 문제 등이 해결될 수 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합의문은 8개 항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정치, 군사, 경제, 사회문화 분야 등 포괄적 영역에서 남북한이 이행해 나가야 할 구체적인 조치들을 담고 있다. 특히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를 남북 당사자가 적극적으로 추진해 갈 것을 합의한 것은 매우 중요하다. 또한 해상경계선 문제를 당장에 합의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서해에서 서로 이익을 볼 수 있는 서해평화협력 지대 구상을 합의한 것 역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다만 남북정상회담이 임기말에 이루어져서 지속적인 이행의 환경을 조성하지 못한 것은 아쉬운 점으로 평가할 수 있다.
1953년 휴전협정이 해상경계선 문제를 포함하지 않음으로써 전쟁 이후 서해는 분쟁의 바다였다. 문제는 남측이 북방한계선을 실질적인 해상경계선으로 주장하고, 북한이 이를 인정하지 않은 상황에서 서로 만족할 수 있는 해상경계선 문제를 새롭게 합의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따라서 남북관계가 충분히 발전하고, 군사적 신뢰구축이 이루어 진 이후에야 이 문제를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잠정적 조치로 공동어로 구역을 설정하여 어업협력을 추진하고, 해양생태공원 등을 설정하여 수자원을 공동으로 조사 관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나아가 한강하구 공동개발이나 해주 경제특구 등을 건설하여 서로 경제적으로 이익을 볼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면, 서해에서 분쟁의 근거들을 제거하고, 평화적인 협력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