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반민특위는 예비 조사를 통해 선정한 친일파에 대한 체포를 시작했다. 1월 8일 박흥식을 시작으로, 1월 10일에 이종형(특위 활동 반대, '반민법' 제정 반대 등 친일파 처리 반대 활동을 했다), 13일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사람인 최린, 거액의 국방헌납을 한 방의석, 친일경찰 김태석을 체포했다. 1월 14일에는 창씨개명제 관련 법안을 기초하고 선전한 이승우와 귀족 이풍한 등을 검거했고, 1월 18일에는 평안북도 특별고등경찰과장과 충남지사를 지낸 친일파 이성근을 검거했다. 또한 1월 25일에는 '친일경찰의 대명사'로 불린 노덕술을 체포했다.
반민족행위자(친일파)에 대한 첫 공판은 1949년 3월 28일 정동 특별재판소 대법정에서 열렸다. 1,2,3부로 구성된 특별재판부는 단심 합의제에 의해 운영되었다. 특별재판소의 첫 공판의 주인공들은 이기용(오전), 박흥식(오후)이었다. 이 첫 재판을 시작으로 파란 많고 해괴한 친일세력의 법정 변호와 이를 준열하게 공박하는 특별검찰부의 설전이 이어지면서 반민특위 활동은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된다. 우리는 이들의 해괴한 친일변호논리를 여기 공개되는 자료를 통해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반민족행위자자 처단의 고함은 해방만세와 동시에 일어났다. 그러나 당시 미군은 전혀 불간섭의 태도를 보였고 『너희들의 일은 너희들이』라는 관점에서 정부가 수립된 뒤에 하는 것이 옳다는 결론을 떨어뜨렸다. 이래서 무려 4년의 기나긴 세월을 그대로 흘려버렸다. 당장에라도 민족의 심판이 있을 것을 믿었던 국민은 서운한 느낌이라기보다 분에 못이기는 침울감을 느꼈던 것이다. 간혹 동정을 보이기도 하고 그들의 비행을 합리화하려는 부류도 있었다. 그러나 민족의 이름으로 민족의 심판은 내려 민족의 오욕을 씻고 이로써 민족의 정기를 살려야 하는 것이 절대요청인 이상 『늦었으되 늦지 않았으니 지금이라도』하는 여론은 정부 수립 후 더 한층 높아갔다. 이래서 국회는 정부 수립 후 제3일인 작년 8월 17일 드디어 반민법안을 상정시켰다. 이로써 다음달 9월 8일 국회를 통과 정부에 회송하였고 이 달 22일 이대통령은 동법을 정식 공포하여 해방 4년 만에 겨우 반민족행위자 처단이 그 법적 근거를 얻게 된 것이다. 이리하여 금년 1월 8일 처음으로 박흥식의 수감을 비롯하여 반민특위의 실질적 행동이 개시되었고 그 일부의 공판이 지난 주 28일부터 열리게 된 것이다. 이래서 도로 찾는 민족정기는 겨우 소생(蘇生)의 실마리를 잡게 된 것이다.
지난 3월 28일부터 개정을 본 반민족행위자특별재판은 3일에 걸친 제1차 공판에서 8명의 피의자에 대한 사실심리가 있었거니와 이 재판이 가지는 역사적ㆍ사회적 의의는 다시 말할 필요도 없을 만큼 중대한 것이므로 공판에 보내는 민족 전체의 관심도 불가불 비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과거 반세기에 걸쳐 민족의 피를 빨아 배부르고 살찐 이들 반민족의 무리들을 공판하는 날 공판정으로 물밀듯이 몰린 방청자의 얼굴들에는 한결같이 오랫동안의 민족적 원수의 처단을 성원하고 통쾌히 여기는 표정이 감출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뉘른베르크재판』(1945년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나치 독일의 전범들과 유대인 학살 관여자들에 대하여 열린 국제 군사 재판)과 『동경재판』(극동국제군사재판, 제2차 세계 대전과 관련된 동아시아의 전쟁 범죄인을 심판한 재판)에서 비인도적 파렴치한의 극치를 이룬 군국주의자들이 어떻게 최후를 맞았으며 또한 이와 같은 전범재판을 계기로 하여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민들이 어떻게 그 결의를 새롭게 하였던가를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실로 『뉘른베르크재판』와 『동경재판』의 실례는 제국주의의 야수와 같은 욕망으로 세계전체인민의 생명과 재산과 모든 문화재를 약탈한 파시즘의 무리들을 처벌하지 않고서는 이 땅위에 평화의 날이 오지 않을 것이며, 그들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한 그 독소와 같은 뿌리는 잡초처럼 성장하여 세계를 다시 혼란으로 뒤덮을 것이라는 어찌할 수 없는 인류 최고의 지상명령 이었던 것이다. 그럼으로 전범재판은 오직 죄를 졌으니 처벌한다는 형법학적 적용만이 아니라 나아가 세계평화의 암적 요소를 미연에 방지하려는 예방학적 의의가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며 잊을 수도 없었다. 그만큼 그 재판이 가지는 의의는 크고도 깊은 바 있었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돌아보아 우리들의 처지는 어떠한가? 이들 반민족행위자는 민족적 죄를 범하였으니 민족정기를 생각할 때 그것을 처벌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소리다. 그런데 그 당연한 소리가 지극히 당연한 것이 되지 못하고만 지난 4년 동안의 해방 기록을 여기 다시 새삼스럽게 뒤져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지금 이들 반민족행위자의 무리를 처단함에 있어서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것은 그들이야말로 한국판 전범자의 군상이라는 점이다. 군국주의자들의 침략행위를 충실히 방조한 이들 친일파들은 문자 그대로 히틀러와 같은 조상의 피를 받아 한 솥 밥을 먹어온 혈연들인 것이다. 그리하여 전후 중국에서는 소위 한간배들[중국에서 친일파를 일컫는 말]을 그들 자체의 손으로 처단한 바 있었고 프랑스에서도 친독파들에 대한 숙청이 활발히 전개되었던 것이 아닌가? 응당 한국판 전범들도 이들과 운명을 같이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 땅이 즐겁게 놀고먹는 온상으로 변하여 마음껏 따뜻한 햇볕을 아직까지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들 한국판 전범을 숙청하지 않고 민족은 끝내 복될 수 없고 삼천리는 끝내 평화로울 수 없다는 엄숙한 명제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친제국주의의 무리들이 그대로 활동을 계속 하고 있는 사회에 어찌 민족의 자주독립이 가능하겠는가? 그것이 불가능함은 삼척동자라도 손쉽게 알 수 있는 진리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첫 공판 3일을 통하여 나타난 피고들의 언행에 있어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중대한 사실을 발견하고 새삼스러운 놀라움과 불안과 격분을 금치 못하는 것이다. 무엇인가? 그들의 말대로 하면 그들은 모두 애국자들이다. 말하자면 친일적 애국자인데 그러니까 따지고 보면 그들의 말하는 애국은 우리나라가 그 대상이 아니라 바다 건너 일본 땅이 되지 말한 법이 없다. 그들의 재판장에 대한 여러 가지 말들은 모두 궤변과 역설과 변명과 회유에 그치고 말 뿐이고, 과거의 죄를 뉘우치는 자는 극소수임을 생각할 때 우리 겨레들은 다시 뼈에 사무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피고는 일제 경찰의 찬양론까지 그치지 않고 변론하기에 이르는 것은 기막힌 현상이요. 그들이 어떻게 그 뼈 속까지 일제의 적자가 되어있는가를 말해주는 것이다. 이들 피고들의 답변을 둘러싸고 일어난 방청석의 분위기를 우리는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때때로 일어나는 실소와 불시에 터져 나오는 권태감의 하품과 혐오-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3일간 공판정에 나타난 방청객들의 얼굴에서 엿볼 수 있던 기대에 어긋나는 듯한 실망감과 불쾌감은 하나의 중요한 암시를 던져 준다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방청객들은 모두 알 수 없는 회의감을 지닌 채 어떤 후련하지 못한 감정으로 각기 공판정 문을 나서는 것이었다. 한결같이 철면피 그대로의 피고에 대한 철저한 처단이 없고서는 방청객들이 결코 후련할 수 없을 것이며 또 민족이 용납할 수 없는 것임을 생각할 때 반민특위 담당자들은 각오와 결의를 굳건히 하지 않고는 안 될 것이다. 방청석의 회의감이 결코 어떤 장래의 결과를 미리 예감한데서 온 것이 아닐 것이지만 앞으로 공판을 전개하고 최후 심판을 내림에 있어서 민족의 울분이 깨끗이 씻어지지 않는 예가 없기를 민중들은 진심으로 기대하여 마지않는 것이다. 민주적 조국 재건의 길을 닦는데 있어 이들 반민자의 처단이 완전히 이뤄지지 않고서는 그것이 무의미한 것이 될 것임을 생각할 때 방청석의 실소와 증오감의 교훈을 통해 공판의 완벽한 결과를 바라는 마음이 절실하다. 한국의 민주건설은 그대로 세계의 그것과 통하는 것이며 이 땅의 평화는 그대로 세계평화로 나아가는 길이다. 파시스트 무리와 그 앞잡이들을 소탕하지 않고는 민주주의와 세계평화의 장래도 위태로울 것이다. 뉘른베르크와 동경은 지금 서울에서 진행되는 특별재판에 그 의무를 넘겨주었다고 봐야 할 것이며 또 그렇게 되어야만 할 것이다. 재판이 가지는 거대한 민족적 의의를 살리는 마당에 모든 진실과 편견은 금물이다. 『반민자처단』의 거족적 과업이 한낱 『태산명동일필』(〔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 태산이 떠날 갈 듯 울리더니 나타난 것은 생쥐 한 마리뿐이다〕라는 뜻)격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며 인민의 압력에 의하여 마지못해 『해보는』 정도의 시시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게 안 되길 기대하는 백성들의 마음이 그대로 반민특위 담당자의 마음이 되어 주길 바라는 것이며 또 그렇게 되리리고 굳게 믿는 바이다. 앞으로 공판의 결과를 전인민이 주시하고 있다.
『주간서울』1949년 4월 4일자 1면
반민족행위자자 처단의 고함은 해방만세와 동시에 일어났다. 그러나 당시 미군은 전혀 불간섭의 태도를 보였고 『너희들의 일은 너희들이』라는 관점에서 정부가 수립된 뒤에 하는 것이 옳다는 결론을 떨어뜨렸다. 이래서 무려 4년의 기나긴 세월을 그대로 흘려버렸다. 당장에라도 민족의 심판이 있을 것을 믿었던 국민은 서운한 느낌이라기보다 분에 못이기는 침울감을 느꼈던 것이다. 간혹 동정을 보이기도 하고 그들의 비행을 합리화하려는 부류도 있었다. 그러나 민족의 이름으로 민족의 심판은 내려 민족의 오욕을 씻고 이로써 민족의 정기를 살려야 하는 것이 절대요청인 이상 『늦었으되 늦지 않았으니 지금이라도』하는 여론은 정부 수립 후 더 한층 높아갔다. 이래서 국회는 정부 수립 후 제3일인 작년 8월 17일 드디어 반민법안을 상정시켰다. 이로써 다음달 9월 8일 국회를 통과 정부에 회송하였고 이 달 22일 이대통령은 동법을 정식 공포하여 해방 4년 만에 겨우 반민족행위자 처단이 그 법적 근거를 얻게 된 것이다. 이리하여 금년 1월 8일 처음으로 박흥식의 수감을 비롯하여 반민특위의 실질적 행동이 개시되었고 그 일부의 공판이 지난 주 28일부터 열리게 된 것이다. 이래서 도로 찾는 민족정기는 겨우 소생(蘇生)의 실마리를 잡게 된 것이다.
지난 3월 28일부터 개정을 본 반민족행위자특별재판은 3일에 걸친 제1차 공판에서 8명의 피의자에 대한 사실심리가 있었거니와 이 재판이 가지는 역사적ㆍ사회적 의의는 다시 말할 필요도 없을 만큼 중대한 것이므로 공판에 보내는 민족 전체의 관심도 불가불 비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과거 반세기에 걸쳐 민족의 피를 빨아 배부르고 살찐 이들 반민족의 무리들을 공판하는 날 공판정으로 물밀듯이 몰린 방청자의 얼굴들에는 한결같이 오랫동안의 민족적 원수의 처단을 성원하고 통쾌히 여기는 표정이 감출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뉘른베르크재판』(1945년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나치 독일의 전범들과 유대인 학살 관여자들에 대하여 열린 국제 군사 재판)과 『동경재판』(극동국제군사재판, 제2차 세계 대전과 관련된 동아시아의 전쟁 범죄인을 심판한 재판)에서 비인도적 파렴치한의 극치를 이룬 군국주의자들이 어떻게 최후를 맞았으며 또한 이와 같은 전범재판을 계기로 하여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민들이 어떻게 그 결의를 새롭게 하였던가를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실로 『뉘른베르크재판』와 『동경재판』의 실례는 제국주의의 야수와 같은 욕망으로 세계전체인민의 생명과 재산과 모든 문화재를 약탈한 파시즘의 무리들을 처벌하지 않고서는 이 땅위에 평화의 날이 오지 않을 것이며, 그들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한 그 독소와 같은 뿌리는 잡초처럼 성장하여 세계를 다시 혼란으로 뒤덮을 것이라는 어찌할 수 없는 인류 최고의 지상명령 이었던 것이다. 그럼으로 전범재판은 오직 죄를 졌으니 처벌한다는 형법학적 적용만이 아니라 나아가 세계평화의 암적 요소를 미연에 방지하려는 예방학적 의의가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며 잊을 수도 없었다. 그만큼 그 재판이 가지는 의의는 크고도 깊은 바 있었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돌아보아 우리들의 처지는 어떠한가? 이들 반민족행위자는 민족적 죄를 범하였으니 민족정기를 생각할 때 그것을 처벌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소리다. 그런데 그 당연한 소리가 지극히 당연한 것이 되지 못하고만 지난 4년 동안의 해방 기록을 여기 다시 새삼스럽게 뒤져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지금 이들 반민족행위자의 무리를 처단함에 있어서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것은 그들이야말로 한국판 전범자의 군상이라는 점이다. 군국주의자들의 침략행위를 충실히 방조한 이들 친일파들은 문자 그대로 히틀러와 같은 조상의 피를 받아 한 솥 밥을 먹어온 혈연들인 것이다. 그리하여 전후 중국에서는 소위 한간배들[중국에서 친일파를 일컫는 말]을 그들 자체의 손으로 처단한 바 있었고 프랑스에서도 친독파들에 대한 숙청이 활발히 전개되었던 것이 아닌가? 응당 한국판 전범들도 이들과 운명을 같이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 땅이 즐겁게 놀고먹는 온상으로 변하여 마음껏 따뜻한 햇볕을 아직까지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들 한국판 전범을 숙청하지 않고 민족은 끝내 복될 수 없고 삼천리는 끝내 평화로울 수 없다는 엄숙한 명제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친제국주의의 무리들이 그대로 활동을 계속 하고 있는 사회에 어찌 민족의 자주독립이 가능하겠는가? 그것이 불가능함은 삼척동자라도 손쉽게 알 수 있는 진리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첫 공판 3일을 통하여 나타난 피고들의 언행에 있어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중대한 사실을 발견하고 새삼스러운 놀라움과 불안과 격분을 금치 못하는 것이다. 무엇인가? 그들의 말대로 하면 그들은 모두 애국자들이다. 말하자면 친일적 애국자인데 그러니까 따지고 보면 그들의 말하는 애국은 우리나라가 그 대상이 아니라 바다 건너 일본 땅이 되지 말한 법이 없다. 그들의 재판장에 대한 여러 가지 말들은 모두 궤변과 역설과 변명과 회유에 그치고 말 뿐이고, 과거의 죄를 뉘우치는 자는 극소수임을 생각할 때 우리 겨레들은 다시 뼈에 사무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피고는 일제 경찰의 찬양론까지 그치지 않고 변론하기에 이르는 것은 기막힌 현상이요. 그들이 어떻게 그 뼈 속까지 일제의 적자가 되어있는가를 말해주는 것이다. 이들 피고들의 답변을 둘러싸고 일어난 방청석의 분위기를 우리는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때때로 일어나는 실소와 불시에 터져 나오는 권태감의 하품과 혐오-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3일간 공판정에 나타난 방청객들의 얼굴에서 엿볼 수 있던 기대에 어긋나는 듯한 실망감과 불쾌감은 하나의 중요한 암시를 던져 준다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방청객들은 모두 알 수 없는 회의감을 지닌 채 어떤 후련하지 못한 감정으로 각기 공판정 문을 나서는 것이었다. 한결같이 철면피 그대로의 피고에 대한 철저한 처단이 없고서는 방청객들이 결코 후련할 수 없을 것이며 또 민족이 용납할 수 없는 것임을 생각할 때 반민특위 담당자들은 각오와 결의를 굳건히 하지 않고는 안 될 것이다. 방청석의 회의감이 결코 어떤 장래의 결과를 미리 예감한데서 온 것이 아닐 것이지만 앞으로 공판을 전개하고 최후 심판을 내림에 있어서 민족의 울분이 깨끗이 씻어지지 않는 예가 없기를 민중들은 진심으로 기대하여 마지않는 것이다. 민주적 조국 재건의 길을 닦는데 있어 이들 반민자의 처단이 완전히 이뤄지지 않고서는 그것이 무의미한 것이 될 것임을 생각할 때 방청석의 실소와 증오감의 교훈을 통해 공판의 완벽한 결과를 바라는 마음이 절실하다. 한국의 민주건설은 그대로 세계의 그것과 통하는 것이며 이 땅의 평화는 그대로 세계평화로 나아가는 길이다. 파시스트 무리와 그 앞잡이들을 소탕하지 않고는 민주주의와 세계평화의 장래도 위태로울 것이다. 뉘른베르크와 동경은 지금 서울에서 진행되는 특별재판에 그 의무를 넘겨주었다고 봐야 할 것이며 또 그렇게 되어야만 할 것이다. 재판이 가지는 거대한 민족적 의의를 살리는 마당에 모든 진실과 편견은 금물이다. 『반민자처단』의 거족적 과업이 한낱 『태산명동일필』(〔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 태산이 떠날 갈 듯 울리더니 나타난 것은 생쥐 한 마리뿐이다〕라는 뜻)격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며 인민의 압력에 의하여 마지못해 『해보는』 정도의 시시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게 안 되길 기대하는 백성들의 마음이 그대로 반민특위 담당자의 마음이 되어 주길 바라는 것이며 또 그렇게 되리리고 굳게 믿는 바이다. 앞으로 공판의 결과를 전인민이 주시하고 있다.
『주간서울』1949년 4월 4일자 1면
그러니까 피고 김태석은 끌어 오르는 애국심에서 일제 경찰계로 들어간 셈이다.
이때 방청석에는 웃음소리가 폭발이다. 친일반역의 거두 김태석의 집에서도 만세소리가 울려 나왔다니까 확실히 조선민족의 독립정신이 장하고 또 쾌하지 않은가 말이다.
...
방청석은 또 웃음이 터진다. 반일투사 강의사 사건을 취급할 수 있도록 매국반역배매국반역배개인적인 이익을 위하여 나라의 주권이나 이권을 남의 나라에 팔아먹고 배반한 무리.라야만 값이 높다는 피고의 가치론(價値論)은 경청하기에 족하다.
반민특위 특별검찰부와 재판부가 반민족행위처벌법에 의해 체포된 반민족행위자(친일파)들을 검거, 조사, 심문, 재판에 대한 기록물을 모은 자료이다. 반민특위가 와해된 이후 대다수의 자료는 분실되었고, 현재 남아있는 자료는 64명에 대한 기록뿐이다. 가장 방대한 자료가 남아있는 '김연수 편'을 살펴보자.
김연수는 일제강점기에 대표적인 친일 기업인으로 경성부 주재 만주국 명예총영사, 조선총독부 중추원의 참의직 등 친일단체의 주요 요직을 맡았고, 특히 1937년 중일전쟁 이후에는 거액의 국방헌금을 기부하는 등 전쟁협력에 앞장 선 인물로 지목되어 1949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의해 체포되었다.
반민특위는 친일파 조사를 문서조사와 현장조사 2가지로 진행했다. 공문서, 신문, 기타 출판물을 조사하여 피의자 명부를 작성한 후 현장조사를 실시했다.
누가 어느 부서에서 얼마나 높은 직책에 있었는지 조선총독부 <직원록>에서 찾아본다.
독립운동가를 체포, 수사, 고문, 재판한 사람이 누구인지 <재판기록>을 찾아본다.
일제에 협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상을 받은 사람이 누구인지 <공적조서>를 찾아본다.
총독부의 기관지기관지정당∙단체∙노동조합 등이 정강∙정책이나 주의∙주장을 선전하기 위하여 발행하는 신문. 라고 할 수 있는 <매일신보>나 <경성일보>에서 전쟁협력을 선전하거나, 징병제 실시를 찬양한 인물들이 누구인지 찾아본다.
일제시대 주요 잡지에 기고문을 통해 일제 식민 지배를 찬양하고 선전한 지식인들이 누구인지 찾아본다.
각 친일협력단체에서 출판한 자료에서 어떤 친일협력행위를 했는지 찾아본다.
일제 말기 누가 비행기 헌납, 무기 헌납 등 국방헌금을 가장 많이 했는지 찾아본다.
각 지역에서 친일파들에 의한 피해사실을 직접 들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