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보는 반민특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친일파, 민족의 법정에 세우자
1948 반민특위친일파, 민족의 법정에 세우자

반민족행위특별법은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1947년 임시 입법기구인 남조선과도입법의원남조선과도입법의원1945년 8·15광복 후 미군정이 법령초안을 작성하려는 목적으로 설립한 한국의 과도적 입법기관.에서는 '민족반역자, 모리간상배모리간상배[謀利奸商輩] 공익이나 상도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갖은 방법으로 자기의 이익만을 꾀하는 사람. 또는 그런 무리.등 처벌에 관한 특별법률 조례'를 제정하려고 했다. 그러나 미군정은 일본 통치 밑에서 협력자가 되지 않은 사람이 극히 드물다는 이유를 들어 법안 통과를 보류해 무산시켰다.

  • 남조선과도입법의원속기록 1947년 3월 17일 제36호

    미군정기에 한국인들을 중심으로 구성한 임시적인 입법기구인 '남조선과도입법의원'에서 친일파 처벌법이 처음으로 논의되었다. 1947년 3월 17일 입법의원에서 논의한 내용을 기록한 회의 속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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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조선과도입법의원속기록 1947년 3월 17일 제36호

    미군정기에 한국인들을 중심으로 구성한 임시적인 입법기구인 '남조선과도입법의원'에서 친일파 처벌법이 처음으로 논의되었다. 1947년 3월 17일 입법의원에서 논의한 내용을 기록한 회의 속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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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조선과도입법의원속기록 1947년 3월 17일 제36호

    미군정기에 한국인들을 중심으로 구성한 임시적인 입법기구인 '남조선과도입법의원'에서 친일파 처벌법이 처음으로 논의되었다. 1947년 3월 17일 입법의원에서 논의한 내용을 기록한 회의 속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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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헌법을 만들기 위해 구성된 제헌국회제헌국회8·15광복 후 미군정하에서 국제연합(UN)의 감시 아래 1948년 5월 10일 총선거를 실시하여 구성된 첫 국회.는 헌법 101조('1945년 8월 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에 따라 친일파 처벌법 제정을 서둘렀다. 새로운 국가에 친일파들을 등용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반민족행위자처벌법 기초특별위원회'가 구성되어 법안 초안을 만들었는데, 김웅진, 김상돈, 노일환, 김명동, 이원홍 등 소장파 의원들이 적극적이었다. 반면 김준연 등 한민당한민당한국민주당. 1945년 8ㆍ15광복 후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민족주의 보수세력이 집결하여 창당한 정당. 이승만ㆍ김구ㆍ이시영 등을 추대하고 당수격인 수석총무에 송진우를 선정. 우익 민족진영의 대표적인 정치세력으로 자리잡아 미군정에 적극 참여하여 실질적으로 미군정의 여당적 지위를 차지. 이승만의 단독정부수립 추진을 적극 지지함으로써 대한민국 정부수립 과정에서 크게 활약.계열 의원들은 '거리에서 우는 사람은 배고프고 옷이 없어 우는 것이지 친일파들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니'라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사회혼란을 야기할 것이니 정부수립 후에 친일청산을 하자던 자들이 이번에는 경제안정을 이유로 반대했다. 일부에서는 친일파 처단은 공산당이 주장하는 것과 같다고 반대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진통 끝에 제헌국회는 9월 7일 '반민족행위처벌법'(반민법)을 103 대 6표로 통과시켰다. 정부는 반민법을 공포하지 않으면 국회가 다른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을 것 같자 9월 22일 대한민국 법령 제3호로 공포했다.

  • 제헌국회속기록 1948년 8월 5일 제40호

    반민족행위자처벌법 기초위원회 설치를 논의한 회의 속기록이다. 이 속기록 내용은 대한민국 국회 회의록 시스템에서 볼 수 있다. ( http://likms.assembly.g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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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헌국회속기록 1948년 8월 5일 제40호

    반민족행위자처벌법 기초위원회 설치를 논의한 회의 속기록이다. 이 속기록 내용은 대한민국 국회 회의록 시스템에서 볼 수 있다. ( http://likms.assembly.g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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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헌국회속기록 1948년 8월 5일 제40호

    반민족행위자처벌법 기초위원회 설치를 논의한 회의 속기록이다. 이 속기록 내용은 대한민국 국회 회의록 시스템에서 볼 수 있다. ( http://likms.assembly.g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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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헌국회속기록 1948년 8월 5일 제40호

    반민족행위자처벌법 기초위원회 설치를 논의한 회의 속기록이다. 이 속기록 내용은 대한민국 국회 회의록 시스템에서 볼 수 있다. ( http://likms.assembly.g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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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헌국회속기록 1948년 8월 5일 제40호

    반민족행위자처벌법 기초위원회 설치를 논의한 회의 속기록이다. 이 속기록 내용은 대한민국 국회 회의록 시스템에서 볼 수 있다. ( http://likms.assembly.g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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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선과도입법의원속기록 제36호 (1947년 3월 17일) 일부 내용

정이형 의원 : 불충분한 설명으로 미안하나마 양해하시고 이해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보충으로 한마디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것을 상정시키기 전에 이것이 너무 광범하겠거니 하는 여러 분의 말씀이 많은데 거기에 대해서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제 자신이 감옥에서 19년 동안이나 갇혀있었으니만큼 내가 이 감정으로 그렇게 하지 않는가 그런 평을 받을까 싶어서 특별히 반대하는 주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남의 나라 식으로 해놓은 것을 여러분이 보고 내용을 생각한 후 심지어 공작 후작 안 들어간 사람이 없다고 하는데 그래서 조선 사람은 거진 반 다 걸렸다고 하지만 원 조문에 가서 그렇게 나열해 넣었지만은 그 중에서 특히 악질분자 몇 사람을 여기서 지적하는 것입니다. 악질분자가 아니면 아무 처단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면 악질분자는 어떻게 골라야 되느냐 하는 질문을 하시겠지만 악질분자는 여러분이 다 생각해도 아는 것이올시다. 아무 면에 가면 이 면사람이 친일파이고 무슨 군에서는 누구이고 어느 도에서는 누구누구라고 손가락으로 꼽아서 구별이 날 만큼 몇 사람밖에 없습니다. 절대다수가 일본사람에게 눌려 살았으니만큼 농민사람들로서는 한 사람도 친일파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 의견이 드러나는 때에 가령 조사위원회가 설치되어서 그 조사를 받게 되면 여러 가지 증거가 나설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조사해서 법적으로 기소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재판소검사가 기소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또 그런 안건을 가지고 판사가 벌을 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친일파 부일협력자의 규정에 들어갈 만한 사람이 이 가운데에서 한 2천만 명 쯤 되겠다고 생각하지만 그 중에서 벌 받는 사람이 몇 사람 될 것이냐 하는 것은 판사의 의견에 달렸지 우리가 함부로 떠들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여기 와서 혁명운동을 했다하더라도 중간에 개오하고 혁명운동에 참가한 사람에게는 그냥 이 적용에서 제외한다는 문구가 있는데 혁명운동이라는 그것을 오해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해방 전에는 혁명운동이라고 하는 것이 있었지만 해방 후에서는 특별히 혁명운동이라는 게 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 해방 후에는 전부 애국자이고 혁명운동자입니다. 이제 조선 사람들은 혁명운동에 있는 사람이고 다 같지 않습니까? 지금은 이미 해방되었는데 무슨 혁명운동입니까. 가령 학병으로 징병으로 해서 또는 자진해서 전지에 나가서 친일행동을 했다고 하더라도 저쪽에 넘어가서 혁명운동에 참가한 사람 또는 3.1운동당시에 일본경관으로서 칼을 빼가지고 만세 부른 이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다 혁명운동가라고 할 수 있느냐 그러니까 그 전의 것은 어떻게 되었는지 해방당시에 판단하여서 혁명운동에 있던 사람들은 누구라고 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과거행위가 나쁘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이 혁명운동에 참가한 때에 지나간 일은 청산되었다고 저는 생각하고서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쭉 양독했지만 우리 위원회로서 각처에 들어온 자료를 수합해서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그 순서를 대략 정해보기로 해봤지만 일일이 작정할 수가 없어서 순전히 나열해간 것뿐입니다. 이것을 제출한지가 벌써 한 달이 가까워 오게 되는데 거기에 무엇이 빠졌는가하는 그러한 조건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공민권 해방하는 건에 대해서는 내가 그렇게 경솔한 행동을 쓰느냐하는 그러한 지적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의원 가운데에서도 그런 지적을 하는 이도 많이 있었고 또 혹은 그렇게 광범위로 해서 조선사람 한 사람도 없이 그냥 전부 친일파로 몰아냈다. 그러한 무모한 일이 어디 있느냐 그러한 지적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로 따진다면 몇 사람 안 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의 의견으로 전부 참작할 것은 자유이시니까 많이 고려하시기 바랍니다.
양제박 의원 : 질문하겠습니다. 많은 관심을 가지시고 상세히 규정을 하셨는데 여기에 동회장까지 규정을 하고 반장을 규정하지 않는 이유는 무슨 이유인지 또 중요한 것이 여기 있습니다. 학생 학부형을 어찌 규정하는 것인지 어린 아이가 여덟 살 될 것 같으면 일본놈이 경영하는 학교에 보내서 우리말을 가르치지 않고 일본말을 가르친다 '가갸거겨...' 가 아니라 '아이우에오'부터 가르킨다 그 이이는 조선말을 잘 모른다. 그래서 그것은 반드시 일본놈되라는 학부형이다 대학까지 갈 것 같으면 그렇게 마련되게 되어있어요. 그런데 그 부형과 학생을 어째서 규정하지 않았습니까 창씨를 한 사람에게 대해서는 규정이 있습니다. 그런데 목을 베어도 창씨를 안했느냐 반드시 친일하고 일본놈되고 싶어서 창씨했다 그러면 어째서 그것을 규정하지 않았습니까. 또는 전쟁당시에 '황국신민서사'를 읽은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을 어찌 규정하지 않았는가 '반드시 우리는 단결해서 이 싸움을 합시다' 그런 황국신민서사 읽은 사람 또 '일본제국만세' '천황폐하만세' 그렇게 부른 사람들을 어째서 규정하지 않았습니까. 대답해주십시오.
정이형 의원 : 친일파라고 규정한 그것은 지금 물으시는 그 의원의 의견과 저의 정신과 아주 반대입니다. 저는 친일파규정을 어떤 조건 밑에서 했느냐하면 일본놈 또는 자기이익을 위해서 동포에게 해를 끼친 악질분자를 부일협력자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친일파의 제1조건 규정입니다. 일본말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주는 것에 대해서는 왜 규정을 안 했느냐 하셨는데 '일본놈과 결혼한 자 생활용어를 일본화한 자...' 거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또 창씨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창씨를 수창한자 창씨를 강요한자' ... 그런데 창씨한 사람은 왜 안했느냐 하시지만 그이는 적어도 고의로 이 입법을 반대하는 의사에서 나온 줄로 생각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창씨를 안 하면 학교에도 다닐 수 없고 직업도 얻을 수가 없어서 그래서 그것은 친일파라고 아니했습니다. 그 입법한 정신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설명 : 친일반민족행위처벌법의 제정에 앞장섰던 정이형 의원의 주장은 해방 직후가 친일파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중요하고 확실한 시기였다는 점을 시사한다. 각 지역에서 대표적인 친일파를 누구라도 손에 꼽을 수 있을 만큼 일제강점기 당시 기억이 생생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문제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도 보편화되어있던 시기였던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양제박 의원은 법 조항의 세부적 부분을 지적하며 법 규정의 한계와 문제점을 강조하고 있다.

남조선과도입법의원속기록 제36호 (1947년 3월 17일) 일부 내용

정이형 의원 : 불충분한 설명으로 미안하나마 양해하시고 이해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보충으로 한마디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것을 상정시키기 전에 이것이 너무 광범하겠거니 하는 여러 분의 말씀이 많은데 거기에 대해서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제 자신이 감옥에서 19년 동안이나 갇혀있었으니만큼 내가 이 감정으로 그렇게 하지 않는가 그런 평을 받을까 싶어서 특별히 반대하는 주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남의 나라 식으로 해놓은 것을 여러분이 보고 내용을 생각한 후 심지어 공작 후작 안 들어간 사람이 없다고 하는데 그래서 조선 사람은 거진 반 다 걸렸다고 하지만 원 조문에 가서 그렇게 나열해 넣었지만은 그 중에서 특히 악질분자 몇 사람을 여기서 지적하는 것입니다. 악질분자가 아니면 아무 처단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면 악질분자는 어떻게 골라야 되느냐 하는 질문을 하시겠지만 악질분자는 여러분이 다 생각해도 아는 것이올시다. 아무 면에 가면 이 면사람이 친일파이고 무슨 군에서는 누구이고 어느 도에서는 누구누구라고 손가락으로 꼽아서 구별이 날 만큼 몇 사람밖에 없습니다. 절대다수가 일본사람에게 눌려 살았으니만큼 농민사람들로서는 한 사람도 친일파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 의견이 드러나는 때에 가령 조사위원회가 설치되어서 그 조사를 받게 되면 여러 가지 증거가 나설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조사해서 법적으로 기소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재판소검사가 기소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또 그런 안건을 가지고 판사가 벌을 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친일파 부일협력자의 규정에 들어갈 만한 사람이 이 가운데에서 한 2천만 명 쯤 되겠다고 생각하지만 그 중에서 벌 받는 사람이 몇 사람 될 것이냐 하는 것은 판사의 의견에 달렸지 우리가 함부로 떠들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여기 와서 혁명운동을 했다하더라도 중간에 개오하고 혁명운동에 참가한 사람에게는 그냥 이 적용에서 제외한다는 문구가 있는데 혁명운동이라는 그것을 오해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해방 전에는 혁명운동이라고 하는 것이 있었지만 해방 후에서는 특별히 혁명운동이라는 게 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 해방 후에는 전부 애국자이고 혁명운동자입니다. 이제 조선 사람들은 혁명운동에 있는 사람이고 다 같지 않습니까? 지금은 이미 해방되었는데 무슨 혁명운동입니까. 가령 학병으로 징병으로 해서 또는 자진해서 전지에 나가서 친일행동을 했다고 하더라도 저쪽에 넘어가서 혁명운동에 참가한 사람 또는 3.1운동당시에 일본경관으로서 칼을 빼가지고 만세 부른 이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다 혁명운동가라고 할 수 있느냐 그러니까 그 전의 것은 어떻게 되었는지 해방당시에 판단하여서 혁명운동에 있던 사람들은 누구라고 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과거행위가 나쁘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이 혁명운동에 참가한 때에 지나간 일은 청산되었다고 저는 생각하고서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쭉 양독했지만 우리 위원회로서 각처에 들어온 자료를 수합해서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그 순서를 대략 정해보기로 해봤지만 일일이 작정할 수가 없어서 순전히 나열해간 것뿐입니다. 이것을 제출한지가 벌써 한 달이 가까워 오게 되는데 거기에 무엇이 빠졌는가하는 그러한 조건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공민권 해방하는 건에 대해서는 내가 그렇게 경솔한 행동을 쓰느냐하는 그러한 지적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의원 가운데에서도 그런 지적을 하는 이도 많이 있었고 또 혹은 그렇게 광범위로 해서 조선사람 한 사람도 없이 그냥 전부 친일파로 몰아냈다. 그러한 무모한 일이 어디 있느냐 그러한 지적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로 따진다면 몇 사람 안 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의 의견으로 전부 참작할 것은 자유이시니까 많이 고려하시기 바랍니다.
양제박 의원 : 질문하겠습니다. 많은 관심을 가지시고 상세히 규정을 하셨는데 여기에 동회장까지 규정을 하고 반장을 규정하지 않는 이유는 무슨 이유인지 또 중요한 것이 여기 있습니다. 학생 학부형을 어찌 규정하는 것인지 어린 아이가 여덟 살 될 것 같으면 일본놈이 경영하는 학교에 보내서 우리말을 가르치지 않고 일본말을 가르친다 '가갸거겨...' 가 아니라 '아이우에오'부터 가르킨다 그 이이는 조선말을 잘 모른다. 그래서 그것은 반드시 일본놈되라는 학부형이다 대학까지 갈 것 같으면 그렇게 마련되게 되어있어요. 그런데 그 부형과 학생을 어째서 규정하지 않았습니까 창씨를 한 사람에게 대해서는 규정이 있습니다. 그런데 목을 베어도 창씨를 안했느냐 반드시 친일하고 일본놈되고 싶어서 창씨했다 그러면 어째서 그것을 규정하지 않았습니까. 또는 전쟁당시에 '황국신민서사'를 읽은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을 어찌 규정하지 않았는가 '반드시 우리는 단결해서 이 싸움을 합시다' 그런 황국신민서사 읽은 사람 또 '일본제국만세' '천황폐하만세' 그렇게 부른 사람들을 어째서 규정하지 않았습니까. 대답해주십시오.
정이형 의원 : 친일파라고 규정한 그것은 지금 물으시는 그 의원의 의견과 저의 정신과 아주 반대입니다. 저는 친일파규정을 어떤 조건 밑에서 했느냐하면 일본놈 또는 자기이익을 위해서 동포에게 해를 끼친 악질분자를 부일협력자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친일파의 제1조건 규정입니다. 일본말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주는 것에 대해서는 왜 규정을 안 했느냐 하셨는데 '일본놈과 결혼한 자 생활용어를 일본화한 자...' 거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또 창씨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창씨를 수창한자 창씨를 강요한자' ... 그런데 창씨한 사람은 왜 안했느냐 하시지만 그이는 적어도 고의로 이 입법을 반대하는 의사에서 나온 줄로 생각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창씨를 안 하면 학교에도 다닐 수 없고 직업도 얻을 수가 없어서 그래서 그것은 친일파라고 아니했습니다. 그 입법한 정신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설명 : 친일반민족행위처벌법의 제정에 앞장섰던 정이형 의원의 주장은 해방 직후가 친일파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중요하고 확실한 시기였다는 점을 시사한다. 각 지역에서 대표적인 친일파를 누구라도 손에 꼽을 수 있을 만큼 일제강점기 당시 기억이 생생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문제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도 보편화되어있던 시기였던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양제박 의원은 법 조항의 세부적 부분을 지적하며 법 규정의 한계와 문제점을 강조하고 있다.

남조선과도입법의원속기록 제36호 (1947년 3월 17일) 일부 내용

정이형 의원 : 불충분한 설명으로 미안하나마 양해하시고 이해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보충으로 한마디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것을 상정시키기 전에 이것이 너무 광범하겠거니 하는 여러 분의 말씀이 많은데 거기에 대해서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제 자신이 감옥에서 19년 동안이나 갇혀있었으니만큼 내가 이 감정으로 그렇게 하지 않는가 그런 평을 받을까 싶어서 특별히 반대하는 주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남의 나라 식으로 해놓은 것을 여러분이 보고 내용을 생각한 후 심지어 공작 후작 안 들어간 사람이 없다고 하는데 그래서 조선 사람은 거진 반 다 걸렸다고 하지만 원 조문에 가서 그렇게 나열해 넣었지만은 그 중에서 특히 악질분자 몇 사람을 여기서 지적하는 것입니다. 악질분자가 아니면 아무 처단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면 악질분자는 어떻게 골라야 되느냐 하는 질문을 하시겠지만 악질분자는 여러분이 다 생각해도 아는 것이올시다. 아무 면에 가면 이 면사람이 친일파이고 무슨 군에서는 누구이고 어느 도에서는 누구누구라고 손가락으로 꼽아서 구별이 날 만큼 몇 사람밖에 없습니다. 절대다수가 일본사람에게 눌려 살았으니만큼 농민사람들로서는 한 사람도 친일파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 의견이 드러나는 때에 가령 조사위원회가 설치되어서 그 조사를 받게 되면 여러 가지 증거가 나설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조사해서 법적으로 기소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재판소검사가 기소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또 그런 안건을 가지고 판사가 벌을 주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친일파 부일협력자의 규정에 들어갈 만한 사람이 이 가운데에서 한 2천만 명 쯤 되겠다고 생각하지만 그 중에서 벌 받는 사람이 몇 사람 될 것이냐 하는 것은 판사의 의견에 달렸지 우리가 함부로 떠들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여기 와서 혁명운동을 했다하더라도 중간에 개오하고 혁명운동에 참가한 사람에게는 그냥 이 적용에서 제외한다는 문구가 있는데 혁명운동이라는 그것을 오해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해방 전에는 혁명운동이라고 하는 것이 있었지만 해방 후에서는 특별히 혁명운동이라는 게 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 해방 후에는 전부 애국자이고 혁명운동자입니다. 이제 조선 사람들은 혁명운동에 있는 사람이고 다 같지 않습니까? 지금은 이미 해방되었는데 무슨 혁명운동입니까. 가령 학병으로 징병으로 해서 또는 자진해서 전지에 나가서 친일행동을 했다고 하더라도 저쪽에 넘어가서 혁명운동에 참가한 사람 또는 3.1운동당시에 일본경관으로서 칼을 빼가지고 만세 부른 이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다 혁명운동가라고 할 수 있느냐 그러니까 그 전의 것은 어떻게 되었는지 해방당시에 판단하여서 혁명운동에 있던 사람들은 누구라고 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과거행위가 나쁘다고 할지라도 그 사람이 혁명운동에 참가한 때에 지나간 일은 청산되었다고 저는 생각하고서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쭉 양독했지만 우리 위원회로서 각처에 들어온 자료를 수합해서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그 순서를 대략 정해보기로 해봤지만 일일이 작정할 수가 없어서 순전히 나열해간 것뿐입니다. 이것을 제출한지가 벌써 한 달이 가까워 오게 되는데 거기에 무엇이 빠졌는가하는 그러한 조건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공민권 해방하는 건에 대해서는 내가 그렇게 경솔한 행동을 쓰느냐하는 그러한 지적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의원 가운데에서도 그런 지적을 하는 이도 많이 있었고 또 혹은 그렇게 광범위로 해서 조선사람 한 사람도 없이 그냥 전부 친일파로 몰아냈다. 그러한 무모한 일이 어디 있느냐 그러한 지적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로 따진다면 몇 사람 안 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의 의견으로 전부 참작할 것은 자유이시니까 많이 고려하시기 바랍니다.
양제박 의원 : 질문하겠습니다. 많은 관심을 가지시고 상세히 규정을 하셨는데 여기에 동회장까지 규정을 하고 반장을 규정하지 않는 이유는 무슨 이유인지 또 중요한 것이 여기 있습니다. 학생 학부형을 어찌 규정하는 것인지 어린 아이가 여덟 살 될 것 같으면 일본놈이 경영하는 학교에 보내서 우리말을 가르치지 않고 일본말을 가르친다 '가갸거겨...' 가 아니라 '아이우에오'부터 가르킨다 그 이이는 조선말을 잘 모른다. 그래서 그것은 반드시 일본놈되라는 학부형이다 대학까지 갈 것 같으면 그렇게 마련되게 되어있어요. 그런데 그 부형과 학생을 어째서 규정하지 않았습니까 창씨를 한 사람에게 대해서는 규정이 있습니다. 그런데 목을 베어도 창씨를 안했느냐 반드시 친일하고 일본놈되고 싶어서 창씨했다 그러면 어째서 그것을 규정하지 않았습니까. 또는 전쟁당시에 '황국신민서사'를 읽은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을 어찌 규정하지 않았는가 '반드시 우리는 단결해서 이 싸움을 합시다' 그런 황국신민서사 읽은 사람 또 '일본제국만세' '천황폐하만세' 그렇게 부른 사람들을 어째서 규정하지 않았습니까. 대답해주십시오.
정이형 의원 : 친일파라고 규정한 그것은 지금 물으시는 그 의원의 의견과 저의 정신과 아주 반대입니다. 저는 친일파규정을 어떤 조건 밑에서 했느냐하면 일본놈 또는 자기이익을 위해서 동포에게 해를 끼친 악질분자를 부일협력자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친일파의 제1조건 규정입니다. 일본말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주는 것에 대해서는 왜 규정을 안 했느냐 하셨는데 '일본놈과 결혼한 자 생활용어를 일본화한 자...' 거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또 창씨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창씨를 수창한자 창씨를 강요한자' ... 그런데 창씨한 사람은 왜 안했느냐 하시지만 그이는 적어도 고의로 이 입법을 반대하는 의사에서 나온 줄로 생각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창씨를 안 하면 학교에도 다닐 수 없고 직업도 얻을 수가 없어서 그래서 그것은 친일파라고 아니했습니다. 그 입법한 정신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설명 : 친일반민족행위처벌법의 제정에 앞장섰던 정이형 의원의 주장은 해방 직후가 친일파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중요하고 확실한 시기였다는 점을 시사한다. 각 지역에서 대표적인 친일파를 누구라도 손에 꼽을 수 있을 만큼 일제강점기 당시 기억이 생생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문제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도 보편화되어있던 시기였던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양제박 의원은 법 조항의 세부적 부분을 지적하며 법 규정의 한계와 문제점을 강조하고 있다.

제헌국회속기록 제40호 (1948년 8월 5일) 일부 내용

서이환 의원 : 이 특별위원회의 설치에 대해 가지고서는 본 의원도 찬동할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만은 이 안건의 의미에 있어가지고서는 선후직간이 되는 관계가 있는 까닭에 이에 대해서 반대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대체 '물유본말(物有本末)하고 사유선후(事有先後)이니까' 반드시 본말(처음과 끝)과 선후(앞뒤)를 갖추어 가지고서 우리에 일을 추진하지 않을 것 같으면 복잡한 일이 더 혼란스럽게 될 염려가 있는 까닭입니다. 특별위원회라고 하는 것은 이 안건만이 아니라 문제가 되었던 화폐문제라고 하든지 토지개혁문제라고 하든지 남북통일문제 라고 하든지 기타 여러 가지 특수의 안건이 있어가지고서 어느 것이든지 특별위원회를 하루 바삐 구성해가지고서 이 특수한 안건을 규정을 지었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그것을 일일이 특별위원회의 문제가 나와 가지고서 특별위원회를 구성해가지고서 취급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이 됩니다. 더구나 이 헌법 제 101조에 규정되어 있는 특별법이라고 하는 것은 지금에 있어 법제사법위원회를 떠나 이것을 특별위원회를 특별히 설치할 필요는 없으며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능히 취급할 도리가 있을 것이며 법제사법위원회라고 하더라도 이 안건보다 더 긴급한 안이 많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장홍염 의원 : 저도 이 특별위원회의 구성을 찬성합니다. 이제 그런 것은 물론 여러분께서도 저보다 잘 아시고 계실 줄 압니다. 목욕을 안 하면서도 깨끗한 새 옷을 입고자 하는 것이 인도의 상정이요 우리가 새 나라 새 국가를 건설하는데 있어서는 좀 더 깨끗한 인물을 등장시키는 것은 우리 정부가 바라는 바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물론 지방조직법 모든 법률 모든 것이 긴급하고 토지개혁도 긴급하고 모든 것이 긴급합니다만 우리에게 긴급한 것은 오직 정부를 운영해 나갈 인물, 참으로 정치를 운영해나갈 인물이 좋고 나쁜 데에 이 법률을 참으로 시행하느냐 안하느냐 하는 것에 달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정부를 조직하는데 있어서는 좀 더 깨끗한 인물, 우리나라를 팔아먹으려고 다니는 괴물은 안 될 것이고 우리를 잡으러 다닌 괴물은 안 될 것이고, 좀 더 충실한 인물로써 우리 민족 전체가 지지할 수 있는 인물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속히 이 법률을 제정해야 될 것이라고 봅니다. 어떠한 의원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것을 조직한 다음에 이 법률을 제정해야 좋다고 합니다만 만약에 정부를 구성한 다음에 친일파 민족반역자의 법률을 구성하고 보면 정부에 들어있는 관리가 벌써 자기가 행동하였을 것이요 민심을 벌써 위반하고 있습니다. 이 위반시키고 있는 이것을 위반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미리 이런 자들이 정부에 들어가지 않게 방지하기 위해서는 미리 충실한 인물을 등용시키기 위해서 우선 속히 이 법률을 조직해야 된다고 봅니다. (중략) 우리 국민전체가 받든 대통령께서 황송한 말씀 같습니다. 우리가 청원한 것을 잘 들어주시지 않는 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앞으로 이 법률을 제정하면 이 법률이 전적으로 시행되겠는가 안 되겠는가 대단히 의심납니다.
이성득 의원 : 말이 잘 나가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어떻게 한 마디 해볼까 해서 등단하였습니다. 시급한 문제는 내 몸에 걸칠 의복이 없으며 시급한 문제는 내 뱃속에 창자에 채울 물건이 없습니다. 우리 민족이 반역행동을 하였다고 해서 친일파 민족반역자로 규정지어 그 사람을 처단하자는 그것이 우리의 시급한 문제가 아닌 것 같이 생각이 됩니다. 가두에서 우는 사람은 배고파 우는 사람이요 가두에서 우는 사람은 옷이 없는 사람이요 친일파 민족반역자가 있음으로써 가두에서 배고파 울고 헤매며 우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만 두시오" 하는 이 있음)
보시오. 고려가 망하고 이조가 등극할 때에 73인의 충신이 있었습니다만 그 중의 한 사람인 황정승은 도탄에 빠뜨린 민중을 구하기 위하여서는 오로지 당신 한 분이 나가서 민생문제를 해결하고 도탄에 빠진 사람을 건저 달라고 하는 부탁을 이조에 벼슬하신 황희 황정승도 계시었습니다. 그렇다면 시간문제라는 말씀이에요. 지금에 우리가 앉아서 배고파 창자를 채우며 더러운 옷을 다시 갈아입힌다고 할 것 같으면 이 문제가 시급한 것이 아니고...
설명 : 반민족행위처벌법을 제정함에 있어 국회에서는 찬반 의견을 가진 의원들 간의 논쟁이 뜨거웠다. 법안 제정을 반대하는 의원들은 주로 친일파 문제보다 경제ㆍ통일문제 등을 우선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새 정부 조직과 구성을 완성한 후 친일파 문제를 해결하여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법안 제정을 찬성하는 의원들은 새 정부 구성과정에서 친일파가 그 안에 포함될 경우의 문제를 지적하며 친일파를 제외한 충실한 인물등용을 위해서라도 법안 제정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헌국회속기록 제50호 (1948년 8월 27일) 일부 내용

김인식 의원 : 어제 우리 특별위원으로서 국무정부위원 승인에 대해서 논한 결과 우리는 사임원이라는 것을 작성해 가지고 오늘 여기에 제출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결재시간 관계상 통과하지 못해서 보고를 못했기 때문에 사임 이유를 말씀드릴까합니다. 사임 이유는 1. 본위원회에서는 법제처장 유진오씨의 친일행동에 대한 현저한 사실에 관해서 조사 보고하였음 2. 본 국회에서 정부 내 친일분자를 숙청할 것을 정부에 요청할 자료로 유진오씨에 관한 구체적인 것을 확신했음 3. 이 보고에 대해 국회의장은 정부위원에 친일분자라도 임명할 수가 있다는 것을 설명한 바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제49차 본 회의에서 유진오씨를 정부위원에 임명한 보고가 있었음 4. 의장의 결정에 대한 국회의 수락은 본 위원 일동이 정부의 친일분자를 숙청할 것을 정부에 요청하는 것을 거부한다고 명시한 것으로 파악했음 5. 이에 본 의원 일동은 사임을 제의한 것임
우리가 과거 국회 내에서도 결의한 바도 있습니다만 우리 국회로서는 과거 고등관직에 있던 자를 우리가 신정부에 등장시키지 않기로 결의한 바 있습니다. 그래서 의장 부의장으로 해서 대통령에게 파견한 바도 있었습니다만은 오늘 새 국가에 친일파가 등장해서는 안 되리라고 하는 이것이 3천만의 의견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방청석에서 한 청년 "집어처라"하고 고함치며 자리에서 일어남.) (장내소란) (경위가 문밖으로 발언한 청년을 퇴장케 함)
여러분 조용하십시오. 우리는 자아를 버리고 3천만의 원성이 많은
(방청석에서 또 다른 한 청년 고함을 치면서 삐라를 살포. 상의를 의원석에 던짐) (장내 소란) (경위 청년을 포박하여 퇴장시킴) ("이래서는 회의 못 합니다"하는 이 있음)
우리는 친일파를 철저히 처단을 하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중략) 우리는 이 문제를 그야말로 3천만의 감격이 많은 3천만의 대변하는 우리들로서 끝끝내 싸울 이 마당입니다. 그럼에도 확실한 증거를 지적해서 내놓고, 특별위원회를 조직해 정부에 건의하기로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것을 의장이 승인했다는 것은 우리 의원을 그야말로 무시했다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국회의원 여러분은 끝끝내 이것을 주장하기 위하여 용감히 자아를 버리고 주장해 나가기를 바라며 이만 보고해 드립니다.
설명 : 김인식, 이재영 의원 등은 8월 19일 여러 법안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부 내 친일파 숙청에 관한 건의안'을 긴급동의로 제안했다. 건의안은 국무위원. 차관 등 고위직에 친일파가 기용됐으니 이를 조사해 축출하라는 것이었다. 이대통령은 처음 이를 묵살하려다 국회압력이 커지자 유진오 법제처장에게 정부 내 친일파를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결국 국회는 정부에 맡길 수 없다 해서 제안자인 김인식 의원 등으로 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제헌국회속기록 제40호 (1948년 8월 5일) 일부 내용

서이환 의원 : 이 특별위원회의 설치에 대해 가지고서는 본 의원도 찬동할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만은 이 안건의 의미에 있어가지고서는 선후직간이 되는 관계가 있는 까닭에 이에 대해서 반대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대체 '물유본말(物有本末)하고 사유선후(事有先後)이니까' 반드시 본말(처음과 끝)과 선후(앞뒤)를 갖추어 가지고서 우리에 일을 추진하지 않을 것 같으면 복잡한 일이 더 혼란스럽게 될 염려가 있는 까닭입니다. 특별위원회라고 하는 것은 이 안건만이 아니라 문제가 되었던 화폐문제라고 하든지 토지개혁문제라고 하든지 남북통일문제 라고 하든지 기타 여러 가지 특수의 안건이 있어가지고서 어느 것이든지 특별위원회를 하루 바삐 구성해가지고서 이 특수한 안건을 규정을 지었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그것을 일일이 특별위원회의 문제가 나와 가지고서 특별위원회를 구성해가지고서 취급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이 됩니다. 더구나 이 헌법 제 101조에 규정되어 있는 특별법이라고 하는 것은 지금에 있어 법제사법위원회를 떠나 이것을 특별위원회를 특별히 설치할 필요는 없으며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능히 취급할 도리가 있을 것이며 법제사법위원회라고 하더라도 이 안건보다 더 긴급한 안이 많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장홍염 의원 : 저도 이 특별위원회의 구성을 찬성합니다. 이제 그런 것은 물론 여러분께서도 저보다 잘 아시고 계실 줄 압니다. 목욕을 안 하면서도 깨끗한 새 옷을 입고자 하는 것이 인도의 상정이요 우리가 새 나라 새 국가를 건설하는데 있어서는 좀 더 깨끗한 인물을 등장시키는 것은 우리 정부가 바라는 바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물론 지방조직법 모든 법률 모든 것이 긴급하고 토지개혁도 긴급하고 모든 것이 긴급합니다만 우리에게 긴급한 것은 오직 정부를 운영해 나갈 인물, 참으로 정치를 운영해나갈 인물이 좋고 나쁜 데에 이 법률을 참으로 시행하느냐 안하느냐 하는 것에 달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정부를 조직하는데 있어서는 좀 더 깨끗한 인물, 우리나라를 팔아먹으려고 다니는 괴물은 안 될 것이고 우리를 잡으러 다닌 괴물은 안 될 것이고, 좀 더 충실한 인물로써 우리 민족 전체가 지지할 수 있는 인물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속히 이 법률을 제정해야 될 것이라고 봅니다. 어떠한 의원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것을 조직한 다음에 이 법률을 제정해야 좋다고 합니다만 만약에 정부를 구성한 다음에 친일파 민족반역자의 법률을 구성하고 보면 정부에 들어있는 관리가 벌써 자기가 행동하였을 것이요 민심을 벌써 위반하고 있습니다. 이 위반시키고 있는 이것을 위반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미리 이런 자들이 정부에 들어가지 않게 방지하기 위해서는 미리 충실한 인물을 등용시키기 위해서 우선 속히 이 법률을 조직해야 된다고 봅니다. (중략) 우리 국민전체가 받든 대통령께서 황송한 말씀 같습니다. 우리가 청원한 것을 잘 들어주시지 않는 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앞으로 이 법률을 제정하면 이 법률이 전적으로 시행되겠는가 안 되겠는가 대단히 의심납니다.
이성득 의원 : 말이 잘 나가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어떻게 한 마디 해볼까 해서 등단하였습니다. 시급한 문제는 내 몸에 걸칠 의복이 없으며 시급한 문제는 내 뱃속에 창자에 채울 물건이 없습니다. 우리 민족이 반역행동을 하였다고 해서 친일파 민족반역자로 규정지어 그 사람을 처단하자는 그것이 우리의 시급한 문제가 아닌 것 같이 생각이 됩니다. 가두에서 우는 사람은 배고파 우는 사람이요 가두에서 우는 사람은 옷이 없는 사람이요 친일파 민족반역자가 있음으로써 가두에서 배고파 울고 헤매며 우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만 두시오" 하는 이 있음)
보시오. 고려가 망하고 이조가 등극할 때에 73인의 충신이 있었습니다만 그 중의 한 사람인 황정승은 도탄에 빠뜨린 민중을 구하기 위하여서는 오로지 당신 한 분이 나가서 민생문제를 해결하고 도탄에 빠진 사람을 건저 달라고 하는 부탁을 이조에 벼슬하신 황희 황정승도 계시었습니다. 그렇다면 시간문제라는 말씀이에요. 지금에 우리가 앉아서 배고파 창자를 채우며 더러운 옷을 다시 갈아입힌다고 할 것 같으면 이 문제가 시급한 것이 아니고...
설명 : 반민족행위처벌법을 제정함에 있어 국회에서는 찬반 의견을 가진 의원들 간의 논쟁이 뜨거웠다. 법안 제정을 반대하는 의원들은 주로 친일파 문제보다 경제ㆍ통일문제 등을 우선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새 정부 조직과 구성을 완성한 후 친일파 문제를 해결하여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법안 제정을 찬성하는 의원들은 새 정부 구성과정에서 친일파가 그 안에 포함될 경우의 문제를 지적하며 친일파를 제외한 충실한 인물등용을 위해서라도 법안 제정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헌국회속기록 제50호 (1948년 8월 27일) 일부 내용

김인식 의원 : 어제 우리 특별위원으로서 국무정부위원 승인에 대해서 논한 결과 우리는 사임원이라는 것을 작성해 가지고 오늘 여기에 제출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결재시간 관계상 통과하지 못해서 보고를 못했기 때문에 사임 이유를 말씀드릴까합니다. 사임 이유는 1. 본위원회에서는 법제처장 유진오씨의 친일행동에 대한 현저한 사실에 관해서 조사 보고하였음 2. 본 국회에서 정부 내 친일분자를 숙청할 것을 정부에 요청할 자료로 유진오씨에 관한 구체적인 것을 확신했음 3. 이 보고에 대해 국회의장은 정부위원에 친일분자라도 임명할 수가 있다는 것을 설명한 바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제49차 본 회의에서 유진오씨를 정부위원에 임명한 보고가 있었음 4. 의장의 결정에 대한 국회의 수락은 본 위원 일동이 정부의 친일분자를 숙청할 것을 정부에 요청하는 것을 거부한다고 명시한 것으로 파악했음 5. 이에 본 의원 일동은 사임을 제의한 것임
우리가 과거 국회 내에서도 결의한 바도 있습니다만 우리 국회로서는 과거 고등관직에 있던 자를 우리가 신정부에 등장시키지 않기로 결의한 바 있습니다. 그래서 의장 부의장으로 해서 대통령에게 파견한 바도 있었습니다만은 오늘 새 국가에 친일파가 등장해서는 안 되리라고 하는 이것이 3천만의 의견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방청석에서 한 청년 "집어처라"하고 고함치며 자리에서 일어남.) (장내소란) (경위가 문밖으로 발언한 청년을 퇴장케 함)
여러분 조용하십시오. 우리는 자아를 버리고 3천만의 원성이 많은
(방청석에서 또 다른 한 청년 고함을 치면서 삐라를 살포. 상의를 의원석에 던짐) (장내 소란) (경위 청년을 포박하여 퇴장시킴) ("이래서는 회의 못 합니다"하는 이 있음)
우리는 친일파를 철저히 처단을 하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중략) 우리는 이 문제를 그야말로 3천만의 감격이 많은 3천만의 대변하는 우리들로서 끝끝내 싸울 이 마당입니다. 그럼에도 확실한 증거를 지적해서 내놓고, 특별위원회를 조직해 정부에 건의하기로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것을 의장이 승인했다는 것은 우리 의원을 그야말로 무시했다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국회의원 여러분은 끝끝내 이것을 주장하기 위하여 용감히 자아를 버리고 주장해 나가기를 바라며 이만 보고해 드립니다.
설명 : 김인식, 이재영 의원 등은 8월 19일 여러 법안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부 내 친일파 숙청에 관한 건의안'을 긴급동의로 제안했다. 건의안은 국무위원. 차관 등 고위직에 친일파가 기용됐으니 이를 조사해 축출하라는 것이었다. 이대통령은 처음 이를 묵살하려다 국회압력이 커지자 유진오 법제처장에게 정부 내 친일파를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결국 국회는 정부에 맡길 수 없다 해서 제안자인 김인식 의원 등으로 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제헌국회속기록 제40호 (1948년 8월 5일) 일부 내용

서이환 의원 : 이 특별위원회의 설치에 대해 가지고서는 본 의원도 찬동할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만은 이 안건의 의미에 있어가지고서는 선후직간이 되는 관계가 있는 까닭에 이에 대해서 반대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대체 '물유본말(物有本末)하고 사유선후(事有先後)이니까' 반드시 본말(처음과 끝)과 선후(앞뒤)를 갖추어 가지고서 우리에 일을 추진하지 않을 것 같으면 복잡한 일이 더 혼란스럽게 될 염려가 있는 까닭입니다. 특별위원회라고 하는 것은 이 안건만이 아니라 문제가 되었던 화폐문제라고 하든지 토지개혁문제라고 하든지 남북통일문제 라고 하든지 기타 여러 가지 특수의 안건이 있어가지고서 어느 것이든지 특별위원회를 하루 바삐 구성해가지고서 이 특수한 안건을 규정을 지었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그것을 일일이 특별위원회의 문제가 나와 가지고서 특별위원회를 구성해가지고서 취급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이 됩니다. 더구나 이 헌법 제 101조에 규정되어 있는 특별법이라고 하는 것은 지금에 있어 법제사법위원회를 떠나 이것을 특별위원회를 특별히 설치할 필요는 없으며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능히 취급할 도리가 있을 것이며 법제사법위원회라고 하더라도 이 안건보다 더 긴급한 안이 많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장홍염 의원 : 저도 이 특별위원회의 구성을 찬성합니다. 이제 그런 것은 물론 여러분께서도 저보다 잘 아시고 계실 줄 압니다. 목욕을 안 하면서도 깨끗한 새 옷을 입고자 하는 것이 인도의 상정이요 우리가 새 나라 새 국가를 건설하는데 있어서는 좀 더 깨끗한 인물을 등장시키는 것은 우리 정부가 바라는 바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물론 지방조직법 모든 법률 모든 것이 긴급하고 토지개혁도 긴급하고 모든 것이 긴급합니다만 우리에게 긴급한 것은 오직 정부를 운영해 나갈 인물, 참으로 정치를 운영해나갈 인물이 좋고 나쁜 데에 이 법률을 참으로 시행하느냐 안하느냐 하는 것에 달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정부를 조직하는데 있어서는 좀 더 깨끗한 인물, 우리나라를 팔아먹으려고 다니는 괴물은 안 될 것이고 우리를 잡으러 다닌 괴물은 안 될 것이고, 좀 더 충실한 인물로써 우리 민족 전체가 지지할 수 있는 인물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속히 이 법률을 제정해야 될 것이라고 봅니다. 어떠한 의원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것을 조직한 다음에 이 법률을 제정해야 좋다고 합니다만 만약에 정부를 구성한 다음에 친일파 민족반역자의 법률을 구성하고 보면 정부에 들어있는 관리가 벌써 자기가 행동하였을 것이요 민심을 벌써 위반하고 있습니다. 이 위반시키고 있는 이것을 위반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미리 이런 자들이 정부에 들어가지 않게 방지하기 위해서는 미리 충실한 인물을 등용시키기 위해서 우선 속히 이 법률을 조직해야 된다고 봅니다. (중략) 우리 국민전체가 받든 대통령께서 황송한 말씀 같습니다. 우리가 청원한 것을 잘 들어주시지 않는 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앞으로 이 법률을 제정하면 이 법률이 전적으로 시행되겠는가 안 되겠는가 대단히 의심납니다.
이성득 의원 : 말이 잘 나가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어떻게 한 마디 해볼까 해서 등단하였습니다. 시급한 문제는 내 몸에 걸칠 의복이 없으며 시급한 문제는 내 뱃속에 창자에 채울 물건이 없습니다. 우리 민족이 반역행동을 하였다고 해서 친일파 민족반역자로 규정지어 그 사람을 처단하자는 그것이 우리의 시급한 문제가 아닌 것 같이 생각이 됩니다. 가두에서 우는 사람은 배고파 우는 사람이요 가두에서 우는 사람은 옷이 없는 사람이요 친일파 민족반역자가 있음으로써 가두에서 배고파 울고 헤매며 우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만 두시오" 하는 이 있음)
보시오. 고려가 망하고 이조가 등극할 때에 73인의 충신이 있었습니다만 그 중의 한 사람인 황정승은 도탄에 빠뜨린 민중을 구하기 위하여서는 오로지 당신 한 분이 나가서 민생문제를 해결하고 도탄에 빠진 사람을 건저 달라고 하는 부탁을 이조에 벼슬하신 황희 황정승도 계시었습니다. 그렇다면 시간문제라는 말씀이에요. 지금에 우리가 앉아서 배고파 창자를 채우며 더러운 옷을 다시 갈아입힌다고 할 것 같으면 이 문제가 시급한 것이 아니고...
설명 : 반민족행위처벌법을 제정함에 있어 국회에서는 찬반 의견을 가진 의원들 간의 논쟁이 뜨거웠다. 법안 제정을 반대하는 의원들은 주로 친일파 문제보다 경제ㆍ통일문제 등을 우선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새 정부 조직과 구성을 완성한 후 친일파 문제를 해결하여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법안 제정을 찬성하는 의원들은 새 정부 구성과정에서 친일파가 그 안에 포함될 경우의 문제를 지적하며 친일파를 제외한 충실한 인물등용을 위해서라도 법안 제정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헌국회속기록 제50호 (1948년 8월 27일) 일부 내용

김인식 의원 : 어제 우리 특별위원으로서 국무정부위원 승인에 대해서 논한 결과 우리는 사임원이라는 것을 작성해 가지고 오늘 여기에 제출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결재시간 관계상 통과하지 못해서 보고를 못했기 때문에 사임 이유를 말씀드릴까합니다. 사임 이유는 1. 본위원회에서는 법제처장 유진오씨의 친일행동에 대한 현저한 사실에 관해서 조사 보고하였음 2. 본 국회에서 정부 내 친일분자를 숙청할 것을 정부에 요청할 자료로 유진오씨에 관한 구체적인 것을 확신했음 3. 이 보고에 대해 국회의장은 정부위원에 친일분자라도 임명할 수가 있다는 것을 설명한 바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제49차 본 회의에서 유진오씨를 정부위원에 임명한 보고가 있었음 4. 의장의 결정에 대한 국회의 수락은 본 위원 일동이 정부의 친일분자를 숙청할 것을 정부에 요청하는 것을 거부한다고 명시한 것으로 파악했음 5. 이에 본 의원 일동은 사임을 제의한 것임
우리가 과거 국회 내에서도 결의한 바도 있습니다만 우리 국회로서는 과거 고등관직에 있던 자를 우리가 신정부에 등장시키지 않기로 결의한 바 있습니다. 그래서 의장 부의장으로 해서 대통령에게 파견한 바도 있었습니다만은 오늘 새 국가에 친일파가 등장해서는 안 되리라고 하는 이것이 3천만의 의견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방청석에서 한 청년 "집어처라"하고 고함치며 자리에서 일어남.) (장내소란) (경위가 문밖으로 발언한 청년을 퇴장케 함)
여러분 조용하십시오. 우리는 자아를 버리고 3천만의 원성이 많은
(방청석에서 또 다른 한 청년 고함을 치면서 삐라를 살포. 상의를 의원석에 던짐) (장내 소란) (경위 청년을 포박하여 퇴장시킴) ("이래서는 회의 못 합니다"하는 이 있음)
우리는 친일파를 철저히 처단을 하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중략) 우리는 이 문제를 그야말로 3천만의 감격이 많은 3천만의 대변하는 우리들로서 끝끝내 싸울 이 마당입니다. 그럼에도 확실한 증거를 지적해서 내놓고, 특별위원회를 조직해 정부에 건의하기로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것을 의장이 승인했다는 것은 우리 의원을 그야말로 무시했다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국회의원 여러분은 끝끝내 이것을 주장하기 위하여 용감히 자아를 버리고 주장해 나가기를 바라며 이만 보고해 드립니다.
설명 : 김인식, 이재영 의원 등은 8월 19일 여러 법안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부 내 친일파 숙청에 관한 건의안'을 긴급동의로 제안했다. 건의안은 국무위원. 차관 등 고위직에 친일파가 기용됐으니 이를 조사해 축출하라는 것이었다. 이대통령은 처음 이를 묵살하려다 국회압력이 커지자 유진오 법제처장에게 정부 내 친일파를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결국 국회는 정부에 맡길 수 없다 해서 제안자인 김인식 의원 등으로 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제헌국회속기록 제40호 (1948년 8월 5일) 일부 내용

서이환 의원 : 이 특별위원회의 설치에 대해 가지고서는 본 의원도 찬동할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만은 이 안건의 의미에 있어가지고서는 선후직간이 되는 관계가 있는 까닭에 이에 대해서 반대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대체 '물유본말(物有本末)하고 사유선후(事有先後)이니까' 반드시 본말(처음과 끝)과 선후(앞뒤)를 갖추어 가지고서 우리에 일을 추진하지 않을 것 같으면 복잡한 일이 더 혼란스럽게 될 염려가 있는 까닭입니다. 특별위원회라고 하는 것은 이 안건만이 아니라 문제가 되었던 화폐문제라고 하든지 토지개혁문제라고 하든지 남북통일문제 라고 하든지 기타 여러 가지 특수의 안건이 있어가지고서 어느 것이든지 특별위원회를 하루 바삐 구성해가지고서 이 특수한 안건을 규정을 지었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그것을 일일이 특별위원회의 문제가 나와 가지고서 특별위원회를 구성해가지고서 취급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이 됩니다. 더구나 이 헌법 제 101조에 규정되어 있는 특별법이라고 하는 것은 지금에 있어 법제사법위원회를 떠나 이것을 특별위원회를 특별히 설치할 필요는 없으며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능히 취급할 도리가 있을 것이며 법제사법위원회라고 하더라도 이 안건보다 더 긴급한 안이 많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장홍염 의원 : 저도 이 특별위원회의 구성을 찬성합니다. 이제 그런 것은 물론 여러분께서도 저보다 잘 아시고 계실 줄 압니다. 목욕을 안 하면서도 깨끗한 새 옷을 입고자 하는 것이 인도의 상정이요 우리가 새 나라 새 국가를 건설하는데 있어서는 좀 더 깨끗한 인물을 등장시키는 것은 우리 정부가 바라는 바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물론 지방조직법 모든 법률 모든 것이 긴급하고 토지개혁도 긴급하고 모든 것이 긴급합니다만 우리에게 긴급한 것은 오직 정부를 운영해 나갈 인물, 참으로 정치를 운영해나갈 인물이 좋고 나쁜 데에 이 법률을 참으로 시행하느냐 안하느냐 하는 것에 달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정부를 조직하는데 있어서는 좀 더 깨끗한 인물, 우리나라를 팔아먹으려고 다니는 괴물은 안 될 것이고 우리를 잡으러 다닌 괴물은 안 될 것이고, 좀 더 충실한 인물로써 우리 민족 전체가 지지할 수 있는 인물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속히 이 법률을 제정해야 될 것이라고 봅니다. 어떠한 의원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것을 조직한 다음에 이 법률을 제정해야 좋다고 합니다만 만약에 정부를 구성한 다음에 친일파 민족반역자의 법률을 구성하고 보면 정부에 들어있는 관리가 벌써 자기가 행동하였을 것이요 민심을 벌써 위반하고 있습니다. 이 위반시키고 있는 이것을 위반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미리 이런 자들이 정부에 들어가지 않게 방지하기 위해서는 미리 충실한 인물을 등용시키기 위해서 우선 속히 이 법률을 조직해야 된다고 봅니다. (중략) 우리 국민전체가 받든 대통령께서 황송한 말씀 같습니다. 우리가 청원한 것을 잘 들어주시지 않는 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앞으로 이 법률을 제정하면 이 법률이 전적으로 시행되겠는가 안 되겠는가 대단히 의심납니다.
이성득 의원 : 말이 잘 나가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어떻게 한 마디 해볼까 해서 등단하였습니다. 시급한 문제는 내 몸에 걸칠 의복이 없으며 시급한 문제는 내 뱃속에 창자에 채울 물건이 없습니다. 우리 민족이 반역행동을 하였다고 해서 친일파 민족반역자로 규정지어 그 사람을 처단하자는 그것이 우리의 시급한 문제가 아닌 것 같이 생각이 됩니다. 가두에서 우는 사람은 배고파 우는 사람이요 가두에서 우는 사람은 옷이 없는 사람이요 친일파 민족반역자가 있음으로써 가두에서 배고파 울고 헤매며 우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만 두시오" 하는 이 있음)
보시오. 고려가 망하고 이조가 등극할 때에 73인의 충신이 있었습니다만 그 중의 한 사람인 황정승은 도탄에 빠뜨린 민중을 구하기 위하여서는 오로지 당신 한 분이 나가서 민생문제를 해결하고 도탄에 빠진 사람을 건저 달라고 하는 부탁을 이조에 벼슬하신 황희 황정승도 계시었습니다. 그렇다면 시간문제라는 말씀이에요. 지금에 우리가 앉아서 배고파 창자를 채우며 더러운 옷을 다시 갈아입힌다고 할 것 같으면 이 문제가 시급한 것이 아니고...
설명 : 반민족행위처벌법을 제정함에 있어 국회에서는 찬반 의견을 가진 의원들 간의 논쟁이 뜨거웠다. 법안 제정을 반대하는 의원들은 주로 친일파 문제보다 경제ㆍ통일문제 등을 우선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새 정부 조직과 구성을 완성한 후 친일파 문제를 해결하여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법안 제정을 찬성하는 의원들은 새 정부 구성과정에서 친일파가 그 안에 포함될 경우의 문제를 지적하며 친일파를 제외한 충실한 인물등용을 위해서라도 법안 제정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헌국회속기록 제50호 (1948년 8월 27일) 일부 내용

김인식 의원 : 어제 우리 특별위원으로서 국무정부위원 승인에 대해서 논한 결과 우리는 사임원이라는 것을 작성해 가지고 오늘 여기에 제출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결재시간 관계상 통과하지 못해서 보고를 못했기 때문에 사임 이유를 말씀드릴까합니다. 사임 이유는 1. 본위원회에서는 법제처장 유진오씨의 친일행동에 대한 현저한 사실에 관해서 조사 보고하였음 2. 본 국회에서 정부 내 친일분자를 숙청할 것을 정부에 요청할 자료로 유진오씨에 관한 구체적인 것을 확신했음 3. 이 보고에 대해 국회의장은 정부위원에 친일분자라도 임명할 수가 있다는 것을 설명한 바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제49차 본 회의에서 유진오씨를 정부위원에 임명한 보고가 있었음 4. 의장의 결정에 대한 국회의 수락은 본 위원 일동이 정부의 친일분자를 숙청할 것을 정부에 요청하는 것을 거부한다고 명시한 것으로 파악했음 5. 이에 본 의원 일동은 사임을 제의한 것임
우리가 과거 국회 내에서도 결의한 바도 있습니다만 우리 국회로서는 과거 고등관직에 있던 자를 우리가 신정부에 등장시키지 않기로 결의한 바 있습니다. 그래서 의장 부의장으로 해서 대통령에게 파견한 바도 있었습니다만은 오늘 새 국가에 친일파가 등장해서는 안 되리라고 하는 이것이 3천만의 의견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방청석에서 한 청년 "집어처라"하고 고함치며 자리에서 일어남.) (장내소란) (경위가 문밖으로 발언한 청년을 퇴장케 함)
여러분 조용하십시오. 우리는 자아를 버리고 3천만의 원성이 많은
(방청석에서 또 다른 한 청년 고함을 치면서 삐라를 살포. 상의를 의원석에 던짐) (장내 소란) (경위 청년을 포박하여 퇴장시킴) ("이래서는 회의 못 합니다"하는 이 있음)
우리는 친일파를 철저히 처단을 하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중략) 우리는 이 문제를 그야말로 3천만의 감격이 많은 3천만의 대변하는 우리들로서 끝끝내 싸울 이 마당입니다. 그럼에도 확실한 증거를 지적해서 내놓고, 특별위원회를 조직해 정부에 건의하기로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것을 의장이 승인했다는 것은 우리 의원을 그야말로 무시했다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국회의원 여러분은 끝끝내 이것을 주장하기 위하여 용감히 자아를 버리고 주장해 나가기를 바라며 이만 보고해 드립니다.
설명 : 김인식, 이재영 의원 등은 8월 19일 여러 법안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부 내 친일파 숙청에 관한 건의안'을 긴급동의로 제안했다. 건의안은 국무위원. 차관 등 고위직에 친일파가 기용됐으니 이를 조사해 축출하라는 것이었다. 이대통령은 처음 이를 묵살하려다 국회압력이 커지자 유진오 법제처장에게 정부 내 친일파를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결국 국회는 정부에 맡길 수 없다 해서 제안자인 김인식 의원 등으로 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제헌국회속기록 제40호 (1948년 8월 5일) 일부 내용

서이환 의원 : 이 특별위원회의 설치에 대해 가지고서는 본 의원도 찬동할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만은 이 안건의 의미에 있어가지고서는 선후직간이 되는 관계가 있는 까닭에 이에 대해서 반대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대체 '물유본말(物有本末)하고 사유선후(事有先後)이니까' 반드시 본말(처음과 끝)과 선후(앞뒤)를 갖추어 가지고서 우리에 일을 추진하지 않을 것 같으면 복잡한 일이 더 혼란스럽게 될 염려가 있는 까닭입니다. 특별위원회라고 하는 것은 이 안건만이 아니라 문제가 되었던 화폐문제라고 하든지 토지개혁문제라고 하든지 남북통일문제 라고 하든지 기타 여러 가지 특수의 안건이 있어가지고서 어느 것이든지 특별위원회를 하루 바삐 구성해가지고서 이 특수한 안건을 규정을 지었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그것을 일일이 특별위원회의 문제가 나와 가지고서 특별위원회를 구성해가지고서 취급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이 됩니다. 더구나 이 헌법 제 101조에 규정되어 있는 특별법이라고 하는 것은 지금에 있어 법제사법위원회를 떠나 이것을 특별위원회를 특별히 설치할 필요는 없으며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능히 취급할 도리가 있을 것이며 법제사법위원회라고 하더라도 이 안건보다 더 긴급한 안이 많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장홍염 의원 : 저도 이 특별위원회의 구성을 찬성합니다. 이제 그런 것은 물론 여러분께서도 저보다 잘 아시고 계실 줄 압니다. 목욕을 안 하면서도 깨끗한 새 옷을 입고자 하는 것이 인도의 상정이요 우리가 새 나라 새 국가를 건설하는데 있어서는 좀 더 깨끗한 인물을 등장시키는 것은 우리 정부가 바라는 바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물론 지방조직법 모든 법률 모든 것이 긴급하고 토지개혁도 긴급하고 모든 것이 긴급합니다만 우리에게 긴급한 것은 오직 정부를 운영해 나갈 인물, 참으로 정치를 운영해나갈 인물이 좋고 나쁜 데에 이 법률을 참으로 시행하느냐 안하느냐 하는 것에 달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정부를 조직하는데 있어서는 좀 더 깨끗한 인물, 우리나라를 팔아먹으려고 다니는 괴물은 안 될 것이고 우리를 잡으러 다닌 괴물은 안 될 것이고, 좀 더 충실한 인물로써 우리 민족 전체가 지지할 수 있는 인물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속히 이 법률을 제정해야 될 것이라고 봅니다. 어떠한 의원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것을 조직한 다음에 이 법률을 제정해야 좋다고 합니다만 만약에 정부를 구성한 다음에 친일파 민족반역자의 법률을 구성하고 보면 정부에 들어있는 관리가 벌써 자기가 행동하였을 것이요 민심을 벌써 위반하고 있습니다. 이 위반시키고 있는 이것을 위반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미리 이런 자들이 정부에 들어가지 않게 방지하기 위해서는 미리 충실한 인물을 등용시키기 위해서 우선 속히 이 법률을 조직해야 된다고 봅니다. (중략) 우리 국민전체가 받든 대통령께서 황송한 말씀 같습니다. 우리가 청원한 것을 잘 들어주시지 않는 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앞으로 이 법률을 제정하면 이 법률이 전적으로 시행되겠는가 안 되겠는가 대단히 의심납니다.
이성득 의원 : 말이 잘 나가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어떻게 한 마디 해볼까 해서 등단하였습니다. 시급한 문제는 내 몸에 걸칠 의복이 없으며 시급한 문제는 내 뱃속에 창자에 채울 물건이 없습니다. 우리 민족이 반역행동을 하였다고 해서 친일파 민족반역자로 규정지어 그 사람을 처단하자는 그것이 우리의 시급한 문제가 아닌 것 같이 생각이 됩니다. 가두에서 우는 사람은 배고파 우는 사람이요 가두에서 우는 사람은 옷이 없는 사람이요 친일파 민족반역자가 있음으로써 가두에서 배고파 울고 헤매며 우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만 두시오" 하는 이 있음)
보시오. 고려가 망하고 이조가 등극할 때에 73인의 충신이 있었습니다만 그 중의 한 사람인 황정승은 도탄에 빠뜨린 민중을 구하기 위하여서는 오로지 당신 한 분이 나가서 민생문제를 해결하고 도탄에 빠진 사람을 건저 달라고 하는 부탁을 이조에 벼슬하신 황희 황정승도 계시었습니다. 그렇다면 시간문제라는 말씀이에요. 지금에 우리가 앉아서 배고파 창자를 채우며 더러운 옷을 다시 갈아입힌다고 할 것 같으면 이 문제가 시급한 것이 아니고...
설명 : 반민족행위처벌법을 제정함에 있어 국회에서는 찬반 의견을 가진 의원들 간의 논쟁이 뜨거웠다. 법안 제정을 반대하는 의원들은 주로 친일파 문제보다 경제ㆍ통일문제 등을 우선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새 정부 조직과 구성을 완성한 후 친일파 문제를 해결하여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법안 제정을 찬성하는 의원들은 새 정부 구성과정에서 친일파가 그 안에 포함될 경우의 문제를 지적하며 친일파를 제외한 충실한 인물등용을 위해서라도 법안 제정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헌국회속기록 제50호 (1948년 8월 27일) 일부 내용

김인식 의원 : 어제 우리 특별위원으로서 국무정부위원 승인에 대해서 논한 결과 우리는 사임원이라는 것을 작성해 가지고 오늘 여기에 제출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결재시간 관계상 통과하지 못해서 보고를 못했기 때문에 사임 이유를 말씀드릴까합니다. 사임 이유는 1. 본위원회에서는 법제처장 유진오씨의 친일행동에 대한 현저한 사실에 관해서 조사 보고하였음 2. 본 국회에서 정부 내 친일분자를 숙청할 것을 정부에 요청할 자료로 유진오씨에 관한 구체적인 것을 확신했음 3. 이 보고에 대해 국회의장은 정부위원에 친일분자라도 임명할 수가 있다는 것을 설명한 바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제49차 본 회의에서 유진오씨를 정부위원에 임명한 보고가 있었음 4. 의장의 결정에 대한 국회의 수락은 본 위원 일동이 정부의 친일분자를 숙청할 것을 정부에 요청하는 것을 거부한다고 명시한 것으로 파악했음 5. 이에 본 의원 일동은 사임을 제의한 것임
우리가 과거 국회 내에서도 결의한 바도 있습니다만 우리 국회로서는 과거 고등관직에 있던 자를 우리가 신정부에 등장시키지 않기로 결의한 바 있습니다. 그래서 의장 부의장으로 해서 대통령에게 파견한 바도 있었습니다만은 오늘 새 국가에 친일파가 등장해서는 안 되리라고 하는 이것이 3천만의 의견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방청석에서 한 청년 "집어처라"하고 고함치며 자리에서 일어남.) (장내소란) (경위가 문밖으로 발언한 청년을 퇴장케 함)
여러분 조용하십시오. 우리는 자아를 버리고 3천만의 원성이 많은
(방청석에서 또 다른 한 청년 고함을 치면서 삐라를 살포. 상의를 의원석에 던짐) (장내 소란) (경위 청년을 포박하여 퇴장시킴) ("이래서는 회의 못 합니다"하는 이 있음)
우리는 친일파를 철저히 처단을 하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중략) 우리는 이 문제를 그야말로 3천만의 감격이 많은 3천만의 대변하는 우리들로서 끝끝내 싸울 이 마당입니다. 그럼에도 확실한 증거를 지적해서 내놓고, 특별위원회를 조직해 정부에 건의하기로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것을 의장이 승인했다는 것은 우리 의원을 그야말로 무시했다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국회의원 여러분은 끝끝내 이것을 주장하기 위하여 용감히 자아를 버리고 주장해 나가기를 바라며 이만 보고해 드립니다.
설명 : 김인식, 이재영 의원 등은 8월 19일 여러 법안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부 내 친일파 숙청에 관한 건의안'을 긴급동의로 제안했다. 건의안은 국무위원. 차관 등 고위직에 친일파가 기용됐으니 이를 조사해 축출하라는 것이었다. 이대통령은 처음 이를 묵살하려다 국회압력이 커지자 유진오 법제처장에게 정부 내 친일파를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결국 국회는 정부에 맡길 수 없다 해서 제안자인 김인식 의원 등으로 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반민족행위처벌법의 주요 내용은 무엇일까요?

1948년 9월 22일 대한민국 법령 제3호로 공포된 반민족행위처벌법은 총 3장 32조로 구성되었다.

    반민족행위처벌법

  • 1조. 한일 합병을 비롯해 주권 침해 조약에 조인·모의한 자. 사형 또는 무기징역/재산몰수
  • 2조. 일본으로부터 작위를 받거나 일본제국 의원이 되었던 자. 무기/5년 이상 징역/재산몰수
  • 3조. 일제 고등경찰로서 독립운동자와 가족을 살상·박해한 자 또는 이들을 지휘한 자. 사형/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재산몰수
  • 4조. 개인적 영달을 위해 일제 협력한 자.
    습작습작일제가 조선을 강제병합한 후 옛 조선 지배층을 포섭하기 위해 조선귀족령을 만들어 작위를 주었는데, 이들이 받은 작위를 후손들이 이어받는 것을 뜻함.,②중추원 부의장 고문 또는 참의, ③칙임관칙임관일제강점기에 있었던 관리 등급의 하나. 고등관리 모두 8등으로 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1·2등을 칙임관이라고 함. 이상 관리, ④밀정밀정비밀리에 적대국의 내정·동정 등을 탐지하여 보고하는 자, 또는 자국의 비밀을 수집하여 적대국에 제공하는 자.행위로 독립운동 방해, ⑤독립방해 목적 단체 조직, ⑥군경으로 악질적 행위,
    ⑦비행기,병기,탄약 등 군수공업책임 경영, ⑧도, 부의회 자문 또는 결의기관의 의원, ⑨관공리로 악질적 죄적이 현저한 자, ⑩친일단체 수뇌 간부,
    ⑪친일적 언론, 저작, 기타 선전선동 활동을 한 자, ⑫악질적인 행위로 일제에 아부 민족에게 해를 가한자
    10년 이하 징역/15년 이하 공민권공민권국민으로서 국가 또는 지방자치의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 정지/재산몰수
  • 5조. 고등관고등관일제 강점기에 있었던 관리 등급의 하나. 판임관의 위로, 모두 8등으로 되어 있는데, 1·2등을 칙임관, 3등 이하를 주임관이라 하였음., 헌병, 고등경찰 경력자는 공무원에 임명될 수 없다.
질문반민족행위처벌법의 내용 중 공무원에 임명될 수 없는 사람은 누구인가?
해답
고등관, 헌병, 고등경찰 경력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