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민주화 열망에 발맞추어 광주와 전남에서도 민주화를 위한 활동을 전개했다. 학생과 시민은 5월 14일부터 16일까지 대학가와 전남도청을 중심으로 한 도심에서 신군부를 반대하고 민주화를 기원하는 집회와 시위를 개최했다. 시민들은 이때의 집회와 시위를 '민족∙민주화 성회'라고 불렀다. 횃불을 들고 행진하는 학생과 시민은 "계엄을 철폐하라!", "전두환은 물러가라!"고 외쳤다.
학생과 시민들은 주장과 견해를 충분하게 알렸다고 보고, 정세에 따라 다음 행동을 하기로 했다. 이들은 휴교령이 내려지면 전남대학교 정문에서 만날 것을 기약하고 해산했다. 그런데 정부는 18일 0시를 기해 전국으로 계엄령을 확대했다. 계엄령계엄령헌법 제77조에 의거하여 대통령이 고유권한으로 국가 비상시에 선포하는 국가긴급권 이후 재야 정치인들은 연금되었고, 민주화운동 관련자들은 연행되거나 구금되었다.
그리고 국회와 주요 대학, 정부 기관 그리고 언론 및 방송사 등에 계엄군이 배치되었다.
5월 18일 오전 전남대학교 정문 앞에서 5∙18민주화운동이 시작되었다. 전남대학교에 주둔하던 계엄군은 학생들의 출입도 통제했다. 학생들은 학교가 봉쇄된 것을 모른 채 등교하다가 이를 저지하는 계엄군에게 항의했다. 계엄군은 '즉시 귀가하지 않으면 강제로 해산시킨다.'는 경고방송을 하고, 항의하는 학생들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계엄군은 진압봉을 휘두르면서 도망치는 학생들을 끝까지 추적해 구타하고 폭행했다. 시민들이 계엄군에게 항의하자, 계엄군은 이들에게도 폭력을 행사했다. 학생들은 계엄군의 만행을 널리 알리기 위해 도심으로 진출했다.
5월 18일 정오가 되자 시위대의 수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계엄군은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도심에 출동하여 곳곳에 배치되었다. 계엄군은 시민이 조금이라도 모이면 즉시 해산하라며 진압봉을 휘둘렀다. 계엄군은 시위 참여 여부를 가리지 않고 폭행과 연행을 일삼았다.
오후가 되면서 계엄군의 폭력에 분노하고 항의하는 시민들이 더욱 늘어났다. 그러자 계엄군의 진압은 더욱 폭력화 되었다. 시민들은 "비상계엄 해제하라!", "휴교령을 철회하라", "전두환은 물러가라!" 등을 외치면서 며칠 전처럼 전남도청 앞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밤이 되자, 계엄군은 시위의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밤 9시 이후 통행금지령을 내렸다. 계엄군과 경찰은 광주지역 주요 장소 36개소에 배치되어 시민들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시위가 발생하면 가차없이 폭행을 가하고 연행하였다.
계엄령이 내려졌지만 시민의 일상은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5월 19일 계엄군의 잔인한 진압이 시민들 사이에 널리 알려졌다. '충정작전충정작전5∙18민주화운동의 진압을 목적으로 계엄군이 수립하고 실시한 작전명령. 집회와 시위에 대한 모의진압훈련을 일컫기도 함'에 동원된 계엄군은 총과 대검의 휴대는 물론, 화염방사기, 장갑차, 심지어 헬기까지 동원했다. 헬기는 시위대에게 '폭도', '불순분자'라고 하면서 해산을 요구했다. 이러한 계엄군의 행위들은 오히려 시민들을 자극하여, 오후가 되자 시위대의 수는 더 늘었다.
5월 20일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에도 휴교 조치가 내려졌다. 시외버스터미널(현 광주 롯데백화점 터)에서는 계엄군에게 구타당해 죽은 시신이 발견되었다. 금남로 카톨릭센터 앞에서는 계엄군이 30여 명의 연행한 시민들을 속옷만 남긴 채 구타했다. 그리고 서방삼거리에서는 계엄군이 시민들에게 화염방사기를 사용했다. 이러한 계엄군의 행위들은 시민들의 적개심을 상승시켜 자연스럽게 시위에 동참하게 했다.
시민들의 시위를 지지하고, 동참을 호소하는 유인물들이 도심에 배포되었다. 시민들은 ‘애국가’와 ‘아리랑’을 부르면서 계엄군에게 점점 격렬하게 항거했다.
운수업 종사자들도 이에 동참하여 무등경기장에서 200여 대의 택시를 앞세우고 전남도청을 향해 행진했다. 버스를 비롯해 대형 차량들도 합세했다. 20일 밤의 차량시위는 계엄군과 공방전을 벌이는 상황에서 시민들에게 엄청난 힘을 불어 넣어준 활력이 되었다.
한편 시민들은 이와 같은 엄청난 상황들을 왜곡 보도하는 방송국을 불태웠으며, 극단적 진압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도심에 위치한 노동청과 세무서를 파괴했다.
전남대학교 정문, 학생 및 시민에 대한 계엄군의 폭력
민주화, 비상계엄 해제, 전두환(신군부) 퇴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