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보는 6월민주항쟁

6∙29선언
1987 6월민주항쟁6∙29선언

6∙29선언

1987년 6월 29일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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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대표, 직선개헌 선언

민정 중집안서 새헌법에 따라 내년 2월 정부이양
전대통령에 8개항 시국수습책 건의
김대중씨 사면 복권 곧 단행
시국관련 구속자 모두 석방
언기법 개폐 언론자유보장
대학 인사 입시자율성부여

민정당의 노태우대표위원은 29일 상오 ▲여야합의아래 조속히 대통령직선제로 개헌, 새헌법에 의해 88년 2월 평화적 정부 이양 ▲김대중씨에 대한 사면 복권단행 ▲시국관련 구속사범 석방 ▲언론자유와 정당의 건전한 활동보장 등을 골자로 한 8개 항의 「국민 대화합과 위대한 국가로의 전진을 위한 특별선언」을 발표했다. 노대표는 이날 당중집위에서 이 같은 시국수습방안을 제시하고 「만일 이같은 제안이 관철되지 않을 경우 민정당 대통령 후보와 당대표위원직을 포함한 모든 공직에서 사퇴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노대표는 이 선언에서 「의원내각제가 우리나라 민주주의 정착을 위해 가장 바람직한 제도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사회적 혼란을 극복하고 국민적 화해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직선제를 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노대표는 이와 함께 「자유로운 출마와 공정한 경쟁보장이 국민의 올바른 심판을 받을 수 있는 내용으로 대통령선거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새로운 법에 따라 선거운동, 투 개표과정 등에 있어서 최대한의 공명정대한 선거관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노대표는 「모든 분야에 있어서 국민적 화해와 대단결을 도모해야 한다」면서 「그런 의미에서 과거가 어떠했든 간에 김대중씨도 사면 복권되어야 하며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를 부인한 반국가사범이나 살상 파괴 등으로 국기를 흔들었던 극소수를 제외한 모든 시국관련사범들도 석방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노대표는 「이번의 개헌에는 구속적부심전면확대 등 기본권강화조항이 모두 포함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히고 「민정당은 인권침해사례의 즉각적 시정과 제도적 개선을 촉구하는 등 실질적 효과거양에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대표는 「언론자유의 창달을 위해 관련제도와 관행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것」이라고 말하고 이를 위해 ▲언론기본법의 대폭개정 또는 폐지 ▲지방주재 기자부활 ▲프레스카드제폐지 ▲지면증면 등 언론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할 방침임을 천명했다. 노대표는 「개헌절차에도 불구하고 지방의회구성은 예정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어야 하며 시 도단위지방의회 구성도 곧이어 구체적으로 검토, 추진할 것」이라고 밝히고 「대학의 자율화와 기방자치를 조속히 실현하기 위해 대학의 인사 예산행정에 대한 자율성을 보장하고 입시 졸업제도도 그 같은 방향으로 개선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대표는 특히 「우수한 많은 학생들이 학비조달에 큰 어려움이 없도록 관련제도를 보완하고 예산에 반영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대표는 「정당의 건전한 활동이 보장되는 가운데 대화와 타협이 정치풍토가 조속히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밝고 맑은 사회건설을 위해 과감한 사회정화조치를 강구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대표는 이같은 시국수습구상을 중집위와 의원총회를 거쳐 당론으로 확정한 뒤 금명간 청와대를 방문, 당총재인 전두환대통령의 재가를 얻어 후속조치를 강구할 예정이다.



이른 시일 안에 전대통령 단안
이 청와대대변인

이종율청와대대변인은 29일 전두환대통령이 그동안 노태우 민정당 대표위원에게 정국운영의 권한과 책임을 일임해왔음을 상기시키고 「노대표가 발표한 내용이 민정당론으로 결정돼 건의해오면 전대통령이 그동안 가진 각계원로들과의 대화결과를 종합검토해 이른시일안에 단안을 내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대변인은 「김대중씨의 사면 복권문제도 대통령의 고유권한에 속하는 사안이므로 신중히 검토해 단안을 내릴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여야 곧 구체협상
중진 협의기구구성 가능성

여야는 29일 노태우민정당대표위원이 야권의 요구를 전면수용한 시국수습안을 제시함에 따라 대표회담을 비롯, 다각적인 대화를 갖고 개헌협상재개방을 협의할 것으로 보인다. 여야는 일련의 대화를 통해 각 당의 중진들로 협의기구를 구성, 본격적인 개헌협상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개헌협상은 민정당 측에서 야권의 대통령중심직선제를 수용했기 때문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이나 대통령선거법개정문제가 최대의 관건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선거법 개정방향과 관련, 민정당은 투개표의 공정한 관리를 내용으로 선거법을 개정하되 대중유세에 따른 폐단을 방지하기 위한 보완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입장인데 반해 민주당 측은 선거운동방식을 최대한 개방해야 한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에따라 여야는 개헌작업과 선거법협상을 일괄타결, 늦어도 11월까지 국민투표에서 개헌안을 확정지은 다음 연내에 새헌법에 따라 국민이 직접 뽑는 대통령선거를 실시, 내년 2월로 예정된 정부이양준비절차를 끝낼 것으로 예상된다. 민정당은 이미 지난 10일 전당대회에서 노태우대표위원을 대통령후보로 지명했기 때문에 별도의 당내절차를 거치지 않고 노대표가 직선제대통령후보에 출마할 것이 확실시되지만 민주당은 대통령후보지명을 위한 전당대회 절차를 거쳐야하며 경우에 따라 야권판도가 재편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에따라 민주당은 김대중씨의 사면 복권이 단행되는 대로 대통령후보지명을 둘러싸고 치열한 경합을 벌일 것으로 보이는데 김대중씨는 사면 복권에 대비, 정치활동재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국민에 희망 안겨줘" 김영삼씨
"불출마 약속 지킬 것" 김대중씨
하오 기자회견서 입장밝혀

민주당은 29일 노태우민정당대표위원의 시국수습방안에 대해 환영의 뜻을 표시하면서도 구체적인 대응책은 여권의 후속조치를 지켜본 뒤 강구키로 했다. 민주당은 이날 김영삼총재, 김대중씨 간의 양자회동, 확대간부회의 등을 잇달아 열어 노대표의 수습안을 분석한 끝에 이같이 의견을 모았다. 이날 김총재는 노민정당대표의 시국수습안에 대한 논평에서 「대단히 기쁘고 87년은 국민에게 희망을 안겨주는 해가 될 것」이라고 환영했다. 김총재는 「그러나 대통령선거시기 등 정치일정은 여야의 합의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며 「후속정치일정 논의를 위한 중진회담에서 대통령선거법 등을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총재는 이어 「헌법개정 및 대통령선거법, 국회의원건거법 등 부수법안의 개폐는 늦어도 9월 말까지 완료하고 10월 또는 늦어도 11월 중에 대통령선거가 실시돼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김대중 민추협공동의장도 이날 논평을 통해 「6.10대회이래 보여준 우리 국민의 단호한 결의와 위대한 역량의 소산이라고 생각하며 고무적인 발표로 환영한다」고 말하고 「종전과 전혀 다른 큰변화의 말을 민주당대표로부터 듣고 이나라 정치가 새로운 창을 착실히 열어나갈 조짐으로 본다」고 밝혔다. 김의장은 「여권의 최종결정권자인 전두환대통령의 조속한 수락선언을 기대함과 아울러 전세계 우방과 국민의 성원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김의장은 이날 동교동자택에서 자파정무위원모임을 주재하는 자리에서 「정치보복이 없이 평화적인 정권이양을 보장하는 길은 전두환대통령이 민정당총재직에서 물러나고 난국해소를 위해 거국적인 과도중립내각을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의장은 또 자신의 대통령 불출마선언의 유효문제와 관련 「내가 대통령직에 관심이 없다고 한 답변을 유보하는 것이 아니며 정치인의 국민에 대한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고 밝혔다」고 이부총재가 전했다. 양 김씨는 이날하오 각각기자회견을 갖고 향후 정국운영구상과 관련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전 국민적인 항쟁은 마침내 정권의 항복을 받아냈다. 민정당 차기 대통령 후보 지명자인 노태우 민정당대표가 6∙29선언을 발표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통한 88년 2월 평화적 정권이양, 대통령선거법 개정을 통한 공정한 경쟁 보장, 김대중의 사면복권과 시국관련 사범들의 석방, 인간존엄성 존중 및 기본인권 신장, 자유언론의 창달, 지방자치 및 교육자치 실시, 정당의 건전한 활동 보장, 과감한 사회정화조치의 단행 등을 주요내용으로 하고 있다. 국민들은 승리의 기쁨에 들떴다.

시청을 지나는 운구행렬과 추모하는 인파 자료제공 : 인터넷6월항쟁기념관



그러나 그 선언이 있고 혼수상태에 빠졌던 이한열 군이 끝내 숨을 거두어서 많은 사람들은 슬픔에 잠겼다. 7월 9일 이한열 군의 장례식이 연세대에서 열렸다.

이한열 군 장례행렬은 모교인 연세대를 출발해 시청을 지나 고향인 광주로 가서 망월동 묘역에 묻혔다.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이루어지고 1987년 12월 대통령 선거가 열렸지만 야당 후보들이 분열되어 선거승리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질문 고 이한열 장례식에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걸까 생각해 보자.

7, 8, 9월 노동자 대투쟁과 역사의 심판

현대중공업 운동장에 모여 민주노조 결성 임금인상 등을 요구하는 노동자들 [사진원본보기]



그러나 꾸준히 한국의 민주주의는 발전하고 움직였다.

6월 항쟁이 끝나고 7~9월 전국의 노동자들이 사상 최대 규모의 노동자 투쟁을 벌였다. 그동안 너무 열악했던 노동조건을 개선하고자 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 것이다.

그리고 1996년 전두환과 노태우 전 대통령은 12∙12 쿠데타, 5∙18 사건, 비자금 관련 사건으로 법정에 서게 된다.


12∙12 및 5∙18사건 선고공판에서 두 손을 잡고 피고인석에 서있는 전두환, 노태우 전대통령 [사진원본보기]